심보선-신용목-신철규-신현림 신간 시집 ‘돌풍’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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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잘 모르겠어’ 한 달 새 1만2000권 발행
‘문지 시인선 500호’도 1만부
출판계 이례적 동반 열풍에 ‘깜짝’
“SNS 늘면서 압축된 표현에 관심”

신간 시집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늘은 잘 모르겠어(심보선·문학과지성사)‘오늘은 잘 모르겠어’…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오늘은 잘 모르겠어//…
오늘은 잘 모르겠어(심보선·문학과지성사)
‘오늘은 잘 모르겠어’

…지지난밤에는 사랑을 나눴고/지난밤에는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볼 때/어제까지 나는 인간이 확실했었으나//
오늘은 잘 모르겠어//…
심보선 시인이 6년 만에 내놓은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는 출간 한 달여 만에 1만2000권을 찍었다. 심 시인은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눈앞에 없는 사람’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조은혜 문학과지성사 편집자는 “새 시집을 오래 기다렸다는 독자들이 많았다. ‘작가와의 만남’ 행사의 참석자들은 2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했고 남녀 비율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신용목·창비)‘저지르는 비’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이렇게 깊다/내가 저지른 바다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신용목·창비)
‘저지르는 비’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
이렇게 깊다/내가 저지른 바다는//…
신용목 시인의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도 출간 보름 만에 4000권을 발행했다. ‘아무 날의 도시’ 이후 5년 만에 나온 시집으로, 외로움과 절망을 마주한 느낌을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김선영 창비 편집자는 “시인이 간간이 발표했던 시에 대한 반응이 좋아 새 시집에 기대감이 컸다.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판매에 속도가 붙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신철규·문학동네)‘눈물의 중력’…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신철규·문학동네)
‘눈물의 중력’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문학동네)는 신철규 시인의 첫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나온 지 보름 만에 3쇄까지 찍으며 모두 4500권을 발행했다. 문예지 등을 통해 발표했던 시들이 방송,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화제를 모으며 출간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김민정 문학동네 시인선 책임편집자는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과하거나 어렵지 않게 미학적으로 풀어낸 점이 호응을 얻은 것 같다. 시마다 임팩트 있는 행이 들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반지하 앨리스(신현림·민음사)‘반지하 앨리스’…생의 반이 다 묻힌 반지하 인생의 나는/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서로 마음에 등불을 켜 갔다//
반지하 앨리스(신현림·민음사)
‘반지하 앨리스’

…생의 반이 다 묻힌 반지하 인생의 나는/
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
서로 마음에 등불을 켜 갔다//
신현림 시인이 8년 만에 내놓은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민음사)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초판 2000권이 거의 다 나갔다. 시인은 반지하 빌라에서 살았던 경험과 경제적 어려움을 절제된 언어로 토로하면서 여유 있는 시선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노래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0호인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문학과지성사) 역시 지난달 10일 출간한 후 한 달이 조금 지나 누적 1만 부를 찍었다.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 노래’, 마종기의 ‘바람의 말’ 등 유명 시인 65명의 대표작을 2편씩 실었다. 그간 기념호들에 비해 이번 500호는 호응이 훨씬 크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출판계는 신간 시집 열풍에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SNS 이용이 늘어나며 압축적 언어로 표현한 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새 시집이 한꺼번에 큰 인기를 끄는 현상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것. 김효선 알라딘 한국소설·시 담당 MD는 “탄탄한 독자층을 보유한 작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시집을 출간하면서 전반적으로 시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집 열풍에 거는 기대도 크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삶의 쓰라림과 박탈감을 잘 포착해 격조 있게 승화시킨 작품이 사랑받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단순히 시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집을 읽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감성적인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시를 즐기는 독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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