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생 떠나던 초등교…‘중국어 명문’ 변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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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을 준비하는 중국동포들이 미리 챙기는 자료가 있다. 이른바 ‘명문 학교 리스트’다. 나중에 자녀를 데리고 올 경우 진학시킬 학교들이다.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들이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 중에는 ‘○○초교 보내기’도 있다. 이 학교들은 한국어뿐 아니라 중국어도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중국 출신 거주자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들이 꼽는 명문 초교는 대부분 구로구와 금천구 영등포구 등 서울 서남부 지역에 많다. 모두 중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곳이다. 영등포구 대동초교도 그중 하나다. 이 학교의 다문화 학생 비율은 55%로 전국 1위다. 김현숙 대동초교 교감은 “무료로 한국어, 중국어 가르쳐준다는 소문 때문에 다른 학군에 사는 중국 출신 학부모들의 입학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년 2, 8월 새 학기를 앞두고 대규모 ‘전학 소동’이 벌어진다.

하지만 후유증도 나타났다. 중국 학생이 너무 많아지면서 한국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것이다. 전학을 가는 학생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1학년생이 많다. 학부모 강모 씨(40·여)는 “교실에서 중국어로 말하는 학생이 많아 아이가 의사소통에 힘들어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이 학교를 떠날수록 빈자리를 메우는 중국 학생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올 3월 입학생 73명 중 중국 학생이 37명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나는 동안 한국 학생들이 대거 전학 가고 그 대신 중국 학생들이 들어와 1학년생 중 중국 학생 비율이 90%까지 올라갔다.

전교생의 21%가 중국 학생인 서울 금천구 문성초교 사정도 비슷하다. 중국 학생 전학이 2015년 4명에서 2016년 12명으로 1년 만에 3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학교를 떠난 한국 학생은 매년 30명이 넘는다.

학생 역전 현상이 심해지자 최근 학교마다 새로운 시도에 나서고 있다. 중국 학생이 많은 특징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바꾸는 것이다. 국제학교 못지않은 중국어 조기교육이 가능한 학교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문성초교는 중국 내 명문으로 알려진 ‘베이징 국제학교’의 커리큘럼과 유사한 중국어 교육과정을 도입했다. 중국 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2학년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시범 운영 중이다. 교육은 주당 4시간으로 영어(2, 3시간)보다 길다.

대동초교와 서울 구로구 영일초교 등 지역 초등학교 15곳은 중국어와 한국어 중 하나를 선택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마치 대학 강의처럼 주요 과목은 별도로 중국어 교사를 둬 한국 학생도 일반과목을 중국어로 배울 수 있다. 이미경 문성초교 교장은 “중국 학생이 많아지는 학교 특성을 장점으로 특화했다”며 “다문화가 ‘배려’가 아닌 ‘배움’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문성초교가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중국어 수업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학생 65%, 학부모 90%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졌다. 학생 67%, 학부모 81%가 ‘중국어 수업이 학교의 자랑거리’라고 답했다. 학부모 김모 씨(46·여)는 “중국어를 전혀 모르던 아이가 집에서 중국어 노래를 흥얼거리는 수준이 됐다”며 “국제학교 보낸 것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한국 학생의 ‘유턴’ 조짐도 보인다. 문성초교 2학년 학부모 김모 씨(39)는 “아이 친구가 다른 학교로 옮기는 걸 보고 전학을 고민했는데 중국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중국어를 즐겁게 배우는 모습을 보고 계속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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