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조선을 알린 하멜표류기 주인공 표착지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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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세운 제주 용머리 해안 대신 대정읍 신도리 해안說 제기돼 혼란
“道가 논란 종지부 찍어야” 주장도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 하멜 등을 기념하기 위해 표착지로 추정되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해안에 기념비와 난파된 상선 모형이 설치됐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하멜 표류기’를 쓴 네덜란드인 하멜 등을 기념하기 위해 표착지로 추정되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해안에 기념비와 난파된 상선 모형이 설치됐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653년(조선 효종 4년) 8월 16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 스페르버르호가 일본으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제주 해안에서 난파됐다. 당시 승선원 64명 가운데 28명이 익사했고 나머지 36명은 조선에 억류됐다. 제주에 표착한 뒤 13년 동안 억류됐던 이 배의 서기였던 헨드릭 하멜(1630∼1692) 등 8명은 일본으로 탈출했다. 하멜은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에서 겪은 경험담을 기록한 ‘하멜표류기’를 남겼다. 유럽에 조선을 알린 최초의 자료다.

이 표류기는 관원에게 체포된 경위를 비롯해 제주, 한양, 강진, 여수 등지로 끌려 다니며 겪은 군역, 감금, 태형 등을 소상하게 담고 있다. 부록인 ‘조선국기(朝鮮國記)’에서는 당시 지리, 풍토, 경치, 군사, 교육, 무역 등에 대해 하멜이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했다. 하멜 일행은 제주에서 10개월 동안 감금됐다가 한양으로 호송됐으며 전라도 여수에서 유배 도중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탈출한 뒤 네덜란드로 귀국했다.

스페르버르호 난파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해양탐험문화연구소와 하멜기념사업회, 신도2리 마을회 등은 16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해안에 ‘하멜 일행 난파희생자위령비’를 세웠다. 높이 2∼3m, 너비 1m 크기의 위령비 옆에 하멜표류기 속 난파 당시 모습을 새긴 돌도 설치됐다.

이들 단체는 하멜 일행의 표착지가 그동안 알려진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해안이 아니라 대정읍 신도2리 해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용머리해안에는 1980년 한국국제문화협회라는 단체와 네덜란드의 역사문화재단이 제주도 등의 후원을 받아 기념비를 세웠다. 2003년에 인근에 스페르버르호를 재현한 상선 모형을 세워 관광지로 조성했다. 상선 모형을 제작한 배경에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의 인기도 한몫을 했다.

네덜란드인 하멜과 일행이 표류하다 제주에 닿을 당시 희생된 선원 등을 기리는 기념비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해안에 세워졌다. 기념비를 세운 단체들은 이미 하멜기념비가 있는 안덕면 용머리해안이 아니라 신도2리 해안이 진짜 하멜이 도착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해양탐험문화연구소 제공
네덜란드인 하멜과 일행이 표류하다 제주에 닿을 당시 희생된 선원 등을 기리는 기념비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해안에 세워졌다. 기념비를 세운 단체들은 이미 하멜기념비가 있는 안덕면 용머리해안이 아니라 신도2리 해안이 진짜 하멜이 도착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해양탐험문화연구소 제공
하지만 하멜 일행 표착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됐다. 1694년(숙종 20년)부터 2년 동안 제주 목사를 지낸 이익태가 쓴 ‘지영록(知瀛錄)’이 1997년 한글로 번역, 출간되면서 하멜 일행의 표착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지영록은 하멜 일행의 난파 지점을 ‘차귀진하 대야수연변(遮歸鎭下 大也水沿邊)’으로 적시했다. 국립제주박물관이 2003년 마련한 ‘항해와 표류의 역사’ 특별전에서 대야수연변은 대정읍 신도리에서 한경면 고산리 한장동 사이 해안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2014년 하멜기념사업회 등은 지영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멜 일행의 이동거리와 시간을 분석하고 현장을 답사한 결과 표착지를 신도2리 해안으로 규정했다.

용머리해안에 하멜기념비가 세워진 이유는 하멜표류기에 ‘정오를 지나 그간 머물고 있던 해안가를 출발해 4마일을 걸어서 저녁 전에 대정현청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머리해안은 대정현청에서 동쪽으로 직선거리가 6km가량 떨어져 하멜표류기 내용과 얼추 비슷하다고 보고 기념비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증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표착지인 신도2리 해안은 대정현청에서 서쪽으로 8km가량 떨어져 있다.

채바다 해양탐험문화연구소장은 하멜 표착지를 신도2리 해안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채 소장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청년들의 넋을 기리고 하멜 일행이 보여준 도전과 개척정신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위령비를 세우게 됐다”며 “이제 제주도가 나서서 하멜 일행 표착지 논란에 대해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헨드릭 하멜#하멜표류기#조선국기#용머리해안#하멜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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