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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독립투사로 언급한 장덕준 동아일보 기자는 日帝의 간도학살 고발한 첫 순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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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독립투사로 언급한 장덕준 동아일보 기자는 日帝의 간도학살 고발한 첫 순직기자

문병기 기자 입력 2017-08-16 03:00수정 2017-08-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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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로 언급한 동아일보 장덕준 논설기자의 생전 사진(왼쪽)이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14층 편집국 벽면에 걸려 있다. 그 옆에는 1966년 11월 베트남전쟁 취재 중 순직한 백광남 기자(가운데)와 1983년 10월 북한의 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탄 테러로 순직한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의 생전 사진도 걸려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은 항일 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며 동아일보 논설기자였던 장덕준 선생(1892∼1920·건국훈장 독립장) 등을 독립투사로 언급하며 넋을 기렸다.

장 선생은 동아일보가 정간 중이던 1920년 10월 ‘간도참변(경신참변·봉오동 전투 등에서 독립군에 대패한 일본군이 간도의 독립군 근거지를 파괴하면서 조선인 3700여 명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현지로 떠났다 일본군에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언론 사상 첫 순직 기자다. 당시 장 선생은 간도에서 “나의 동포를 해하는 자가 누구이냐고 쫓아와보니 우리가 상상하던 바와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고 조선인을 학살하는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첫 소식을 보내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됐다.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1921년 10월 28일자 기사에 따르면 장 선생은 한밤중에 일본군의 강요로 숙소를 나선 뒤 행방불명돼 일본군에 암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동아일보는 일본 왕실의 ‘3종 신기’를 비판해 정간됐다가 복간되자마자 이튿날(1921년 2월 22일자) 1면 머리기사로 ‘추송 장덕준 형을 사(思)하노라’라는 논설을 싣고, 1930년 4월 1일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장 선생의 죽음을 인정하고 추도식을 거행했다.


황해도 재령군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난 장 선생은 인촌 김성수 선생과 함께 ‘육영회’(인재 양성을 위해 조선 학생을 외국에 유학시키는 모임) 설립을 추진했고 동아일보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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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생은 1920년 4월 2∼13일 ‘조선소요에 대한 일본여론을 비평함’이라는 논설로 3·1운동을 왜곡하는 일본 여론을 비판했다. 장 선생의 동생인 설산 장덕수(1894∼1947)는 동아일보 초대 주간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장 선생과 함께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의사 이태준 선생과 만주에서 독립군을 뒷바라지한 남자현 여사, 발명과학 대중화를 이끈 독립운동가 김용관 선생, 영화 ‘아리랑’을 만든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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