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단체들이 효자·효부·열녀상 전국에 팔아먹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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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향토사학자 심정섭씨 공개
일제강점기 모성공회-표창원 단체… 사기행각 91년만에 드러나 충격
임진왜란 의병장에게 가짜 시호도

수필가이자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14일 광주 북구 자택에서 친일단체인 모성공회(慕聖公會)와 표창원(表彰院)에서 발간한 책자들을 공개했다. 심 씨는 “친일단체가 효자나 열부 등을 표창한 것은 언어도단이며 임진
왜란 의병까지 표창한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수필가이자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가 14일 광주 북구 자택에서 친일단체인 모성공회(慕聖公會)와 표창원(表彰院)에서 발간한 책자들을 공개했다. 심 씨는 “친일단체가 효자나 열부 등을 표창한 것은 언어도단이며 임진 왜란 의병까지 표창한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강점기 친일파 단체들이 돈을 받고 효자·효부·열녀상 등을 남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91년 만에 공개됐다. 이들 단체는 임진왜란 의병장에게 가짜 시호(諡號)까지 주면서 민족혼을 유린한 것으로 드러났다.

광복절 72주년을 맞아 수필가이자 향토사학자인 심정섭 씨(74·광주 북구)는 15일 일제강점기 ‘모성공회(慕聖公會)’와 ‘표창원(表彰院)’이라는 단체에서 만든 책자 5권을 본보에 공개했다. 공개한 책자는 찬양문(讚揚文) 3권, 사시장(私諡狀) 1권, 표창록(表彰錄) 1권이다.

1920, 30년대 서울에서 활동했던 모성공회는 회장에 김종한, 찬성장에 박기양, 고문으로 민병석 등이 참여했다. 민병석 등은 구한말 지금의 장관급인 판서를 지내며 1910년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에 협조해 일제로부터 귀족인 남작 작위를 받은 대표적인 친일파 인물들이다.

모성공회와 표창원이 돈을 받고 효자나 효부 등을 표창한 내용이 담긴 책자.
모성공회와 표창원이 돈을 받고 효자나 효부 등을 표창한 내용이 담긴 책자.
공개된 모성공회 찬양문 3권을 보면 1919년 전남 해남군 노모 씨를 효자로, 1926년 전남 광양시 강모 씨를 열부로, 1929년 전남 장성군 박모 씨를 효열부로 지정했다. 1930년에 발간된 사시장 1권에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호남지역 한 의병에게 시호를 내리는 황당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시호는 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 그의 공덕을 찬양해 내리는 호(號)다. 시장(諡狀)은 재상, 유생들이 시호를 청할 때에 그가 살았을 때 행적을 적은 글이다.

효자나 효부, 열녀 등 상과 시호는 나라에서 정해서 내려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모성공회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상을 내리고 시호까지 줬다. 심 씨는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이 민족혼인 충효열을 표창한 것은 그들의 친일 행각을 숨기면서 당시 가짜 유림 행세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1933년 발간된 표창록은 전남 여수지역 인사들을 충효열, 유림, 문학가, 학자, 자선가 등으로 분류하고 마지막 부분에 대표적인 전국 친일파 인물들을 적어 놓았다. 이들의 사기 행각은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본보 1926년 5월 20일자에는 ‘지방인을 우롱하는 ○○성공회’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공자 맹자를 표방하며 돈을 받고 효자 효부 회원들을 모집한다. 특별회원 오백구십명과 보통회원 사백칠십칠명에게 회비로 천오백여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실렸다. 닷새 후에는 ‘귀족들 인장 위조해 표창의안(表彰議案)을 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모성공회가 당시 100∼200원을 받고 각종 상을 팔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모성공회의 사기 행각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자는 이혁 선생이었다. 심 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외할아버지 백강 조경한 선생으로부터 기사를 쓴 분이 이혁 선생이라는 것을 들었다”며 “당시는 이런 내용을 신문에 보도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혁 선생은 본보 기자로 활동하다 민족학교인 전북 고창고보에서 교편을 잡았다. 광복이 되자 전남대 건립에 앞장섰고 초대 문리대 학장을 지냈다. 그의 아버지는 성균관 박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이광수 씨, 아들은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이한기 씨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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