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킬러 이동국 “내가 영웅이 되고싶진 않다, 사력을 다할 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16일 05시 45분


이동국이 2년 10개월 만에 38세의 만만치 않은 나이로 다시 한 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됐다. 2018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 나설 대표팀 명단에 들어간 베테랑 스트라이커는 월드컵과의 악연을 어떻게 풀지 궁금하다. 스포츠동아DB
이동국이 2년 10개월 만에 38세의 만만치 않은 나이로 다시 한 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됐다. 2018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 나설 대표팀 명단에 들어간 베테랑 스트라이커는 월드컵과의 악연을 어떻게 풀지 궁금하다. 스포츠동아DB
■ 아시아 킬러 이동국, 38세에 다시 단 태극마크

이란·우즈벡전 타깃형 공격수 전격 콜
쌍둥이딸 생일날 아빠가 되레 큰 선물
다시 찾아온 기회, 존재의 이유 고민중
21일 생애 92번째 국가대표 캠프 합류
이동국 월드컵시계는 거꾸로 돌아간다


“축구를 하고 있는 한, 유니폼을 벗지 않고 있는 한 영원한 목표이자 꿈이 아닐까?”

베테랑 스트라이커 이동국(38·전북현대)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태극마크론’이다. 그에게 축구국가대표팀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동기부여다. 떠나 있으면 간절하고, 몸담고 있으면 더 애절해지는 존재. 30여 년간 초록 그라운드를 누비는 자신에게 대표팀은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했다.

2017년 8월 14일, 이동국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이란(8월 31일·서울월드컵경기장)~우즈베키스탄(9월 5일·타슈켄트)으로 이어질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10차전을 앞둔 대표팀 신태용(47) 감독은 26인 태극전사 가운데 1명으로 호명했다.

마침 쌍둥이 딸 재시·재아의 10번째 생일이라 의미가 더했다. “딸보다 아빠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이동국은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축하받아도 될지, 좋아해도 될지 모르겠다. 정말 부담이 크다. 정말 오랜 만에 선수로 입소할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다. 솔직히 마음이 많이 설레고 있다”면서 활짝 웃었다.

축구대표팀 이동국. 스포츠동아DB
축구대표팀 이동국. 스포츠동아DB

● 멈추지 않는 대표팀 열망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함께 뛴 동료들이 하나 둘 유니폼을 벗었다. 대개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먼저 대표팀을 떠났고, 이후 완전히 현역무대를 떠났다. 그동안 여러 차례 던진 질문을 이번에도 반복했다. ‘언제까지 대표팀을 뛸 것이냐’고. 물론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적어도 내 삶에서 국가대표 은퇴는 없을 것 같다. 정든 축구 화를 벗어야 할 때가 국가대표팀도 떠나야 하는 순간이다.”

대표팀 선발을 위해 K리그 현장 구석구석을 살핀 신 감독이 “(이동국도) 뽑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해석은 분분했지만 ‘그만큼 베테랑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는 쪽으로 귀결됐다. 그런데 정말 뽑혔다. 38세 4개월에 이뤄진 태극마크 재 장착.

2014년 10월 14일 코스타리카 평가전(1-3) 패배 이후 3년여만의 복귀다.

대표팀 차두리(37) 코치보다 1살 많은 그가 만약 이란전에 출전하면 고(故) 김용식 옹이 1950년 4월 15일 홍콩과의 A매치에 출격하며 세운 역대 최고령(39세 274일) 선발에 이은 2번째 기록을 찍는다.

물론 마음의 준비는 했다. 신 감독이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이동국은 한 가지를 확인했다. “내가 정말 필요한 존재인가? 경기 외적인 부분이라면 가고 싶지 않다.” 정확히 원한 답을 접한 신 감독은 대표팀 명단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은) 정신적 리더 역할로 뽑은 것이 아니다. 2선까지 내려가 경합하고 찬스를 열어줄 수 있는 타깃형 공격수다. 골은 물론, 공격 포인트에서도 큰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조커든, 선발이든 제 몫을 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기력으로 이미 이동국은 존재감을 뽐냈다. K리그 통산 200골까지 4골 남았다. 어시스트 2개만 추가하면 70(골)-70(도움) 클럽에도 가입한다. 2009년부터 함께 한 전북은 팀의 상징이 된 그와의 계약연장 방침을 세웠다. 기간을 1년으로 하느냐, 더 연장하느냐가 유일한 문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골 갈증이 심하다. 찬스를 놓칠 때 예전보다 훨씬 아쉬워하는 표정이라는 이야기도 접했다. “맞다. 내가 축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껏 걸어온 시간보다 짧지 않나. 언제 어떻게 이별의 순간이 닥칠지 모르니 더 (골이) 배고픈 거다. 대표팀도 그렇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내가 영웅이 되고 싶진 않다. 이 나이에 다시 찾아온 기회에서 어떻게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동국은 역대 A매치에서 이란에 2골, 우즈베키스탄에 4골을 뽑아낸 ‘아시아 킬러’다.

축구대표팀 이동국. 스포츠동아DB
축구대표팀 이동국. 스포츠동아DB

● 멈추지 않은 월드컵 시계

월드컵 최종예선의 고비를 잘 극복하면 한국축구는 본선을 준비하게 된다. 월드컵 직행의 프리미엄은 많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잡아놓은 10~11월 주요 플레이오프(PO) 여정을 고스란히 전력강화에 투자할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할 대한축구협회는 이 기간 유럽 원정 A매치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생존경쟁의 무대다. 2018년 6월까지 러시아월드컵으로 향하는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4년 주기의 월드컵에서 세대교체는 빠짐없이 화두에 오르고 진행되는 만큼 이동국도 떠날 수 있다. 신성(1998년 프랑스)~탈락(2002년 한일)~부상(2006년 독일)~아쉬움(2010년 남아공)의 과정을 거치며 유독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한 터라 월드컵의 의미는 더 없이 각별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 월드컵 본선은 물론이고, 생애 첫 월드컵 득점 역시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늘에 충실하자는 것이 오랜 지론이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하루하루에 사력을 다한 것이 롱런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내년은 내년일 뿐이다. 내게 너무 먼 미래다. 당장 힘들어 축구를 그만둬야 할 수 있는데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오늘과 지금 이 순간에 사력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릴 뿐”이라고 이동국은 말한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대표팀과 이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마지막까지 ‘신태용호’와 동행할 수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스트라이커 출신의 FC서울 황선홍(49) 감독이 남긴 “월드컵에서 생긴 한은 월드컵에서 풀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은 이동국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8월 21일 이동국은 생애 92번째 국가대표 훈련캠프에 합류한다. 104번째 A매치, 그리고 계속될 여정. 이동국의 월드컵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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