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자신만의 하늘을 가져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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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능소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뜻을 가진 능소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뜻을 가진 능소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하늘로 뻗는 나무는 천지를 아는 존재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대부분 천지를 모르고 살아간다. 포장도로 때문에 땅을 밟을 기회가 거의 없고, 자동차와 지하철 생활로 하늘을 볼 틈이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나무 중에서도 능소화과의 능소화(凌소花)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이름처럼 뜨거운 여름 하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도하게 꽃을 피운다.

서양에서는 중국 원산의 능소화가 꽃 모양이 마치 트럼펫을 닮아 ‘차이니스 트럼펫 크리퍼(Chinese Trumpet Creeper)’, 즉 ‘중국의 트럼펫 덩굴식물’이라 부른다. 능소화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이 나무를 아주 좋아해서 ‘양반꽃’으로 불린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담장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능소화를 만날 수 있다. 능소화 꽃부리의 겉은 등황색이다. 그래서 능소화를 금등화(金藤花)라 부른다. 미국 능소화는 꽃부리의 대롱이 능소화보다 길다. 요즘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능소화와 관련해서 적지 않은 사람이 언급하는 내용 중 하나는 능소화를 바라보면 실명(失明)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얘기는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이목구심서 5(耳目口心書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덕무는 ‘어떤 사람이 능소화를 쳐다보다가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이 눈에 들어가서 실명했다’고 썼다.

능소화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힘쓰면서 쉬지 않는’ 자강불식(自彊不息)의 태도 덕분이다. 그런데 자강불식은 하늘의 속성이다. 그래서 능소화는 자강불식하는 하늘을 닮고서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하늘을 가질 수 있다. 자신만의 하늘을 가진다는 것은 곧 자존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자존은 모든 존재의 정체성이지만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많다. 나도 나무를 절실하게 만나기 전까지 자존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자존은 자신의 존재를 완전하게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킬 수 있다. 부모에게서 받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수용하지 않고서는 하늘처럼 자강불식할 수 없다. 자강불식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온전히 사용할 때 가능하다. 자존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힘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능소화#chinese trumpet creeper#이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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