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이건희 시대…한국스포츠계 ‘새판짜기’ 발등의 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14일 05시 45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IOC는 8월 11일 이 회장의 IOC 위원직 사퇴를 공식화했다. 2014년 5월 서울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킨 이 회장은 3년 넘게 치료를 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IOC는 8월 11일 이 회장의 IOC 위원직 사퇴를 공식화했다. 2014년 5월 서울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킨 이 회장은 3년 넘게 치료를 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이건희회장 IOC위원 사퇴를 보는 시선

국제적 네트워크 활용 보이지 않는 힘 발휘
평창동계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 유치 한 몫
삼성 떠난 세계 스포츠계 중국·중동세 득세
한국스포츠 자생력키우기 체육계 변화 중요


삼성전자 이건희(75)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IOC는 11일(한국시간) “이 회장의 가족으로부터 이 회장의 IOC 위원 연임을 고려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알린 한편, 이 회장의 IOC 위원직 사퇴를 공식화했다.

2014년 5월 서울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킨 이 회장은 인근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져 심혈관을 넓혀주는 수술을 받은 뒤 병원 VIP 병실에서 3년 넘게 치료를 받고 있다.

정상적인 대외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회장의 가족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좁았다. 1996애틀랜타올림픽을 기점으로 개인자격의 IOC 위원에 선출된 이 회장의 사퇴로 올림픽 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IOC 위원은 2016리우올림픽 선수투표에서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 위원만 남았다.

막대한 영향력과 화려한 처우 덕분에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은 총 115명이다. 이 가운데 개인자격으로 70명을 뽑고 선수위원 15명, 국제경기단체(IF) 단체장 15명, NOC(국가올림픽위원회) 자격 15명을 선출한다. 세계일류의 대기업 총수인 이 회장의 역할은 대단했다. 경제활동으로 착실히 쌓은 국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요소요소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했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우리가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회장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포스트 이건희’ 시대는 예고된 수순이다.

준비가 전혀 없진 않았다. 결실을 맺지 못했을 뿐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최근 ‘NOC 자격’으로 IOC 위원에 도전했으나 추천명단에 들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3명, 1명의 중량감 있는 인사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외교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유 위원 혼자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어 걱정스럽다.

사실 IOC 위원직은 ‘하늘의 별따기’로 비견될 정도로 문이 좁다. 국제축구연맹(FIFA) 지안니 인판티노 회장,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바스찬 코 회장도 ‘IF 단체장’자격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최종 추천을 받지 못했다. FIFA와 IAFF가 각각 주관하는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은 하계올림픽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메이저 이벤트인지라 두 수장의 탈락은 예상 밖이다. 외신은 엄청난 이변으로 본다.

국내 스포츠에도 이 회장의 퇴장은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미 삼성그룹 차원의 ‘스포츠에서 발 빼기’가 진행되고 있어 걱정이 크다. 첼시(잉글랜드)와 이별하는 등 유럽축구 스폰서 활동에도 미온적인데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챔피언스리그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삼성’이 새겨진 A보드를 찾아볼 수 없다.

삼성의 자리는 이제 중국·중동 기업들이 대신하고 있다.

2대 프로종목인 야구·축구에서의 체감온도 역시 영하권이다. 삼성 라이온즈와 수원삼성의 운영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바뀐 순간부터 비상이 걸렸다. 지금껏 운영비를 줄인 것도 부족해 앞으로도 계속 지원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일각에선 제일기획의 해외 매각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스포츠 활동으로 보고 있어 진짜 한파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많은 스포츠 인들은 “돈이 돌아야 스포츠도 활성화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삼성은 정말 큰 역할을 했다.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채 기업들이 지원해주는 것을 받기만 했던 우리 체육계는 다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스포츠를 떠나려는) 삼성의 행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승마로 대표되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한 파장과 악화된 국민 정서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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