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우리는 염라대왕의 심판을 원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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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사건 판결에 잇단 공격
논평 의견 비판은 가능하지만 사법부 독립은 헌법질서의 핵심
모두를 납득시킬 판결은 없다… 법감정보다 인권이 더 중한 가치
독재에 맞서 인권 지키듯
여론의 광풍에 흔들리지 않는 사법절차 진행돼야 선진국이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얼마 전 법원에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일부 무죄와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엄청난 비난과 공격이 있었다. 담당 법관이 라면 훔친 서민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조 전 장관은 석방한 것이 그 남편과 사법연수원 동기였기 때문이라는 인신공격성 비난까지 있었지만 허위였다. 이 법관은 라면 도둑 사건을 맡은 적이 없었고, 조 전 장관의 남편보다 법조 경력이 10년이나 후배인 사실이 확인되었다. 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결심 공판 과정에서 태극기부대 방청객 수십 명이 박영수 특검에게 폭언을 하고 물통을 던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날로 증가하는 압력과 열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우리 헌법질서의 핵심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이 흔들리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개인의 인권이 위협받게 된다. 법원의 위상이 강한 미국에서도 사법부는 ‘가장 상처받기 쉬운 부(府)’라고 한다. 그만큼 사법권의 독립이 공격과 위협에 취약하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분쟁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결에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재판관은 법률의 문구를 발음하는 입’이라고 했다. 법률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재판관은 그대로 선언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재판관도 인간인 이상 오판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는 판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능과 실수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고, 시류에 편승하거나 압박에 위축돼 자의가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심제도를 두고 판결에 불만이 있는 쪽이 상소해서 다툴 수 있게 한 것이다.

법률의 미비나 불합리성 때문에 재판 결과가 국민 법감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법관은 직무상의 양심에 따라 심판해야 하고, 개인적 소신이나 세계관에 근거해서 재판할 수는 없다. ‘양심에 반(反)해 설교하는 목사는 경멸해야 하지만, 양심에 반하나 법률에 충실한 재판관은 존경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수 의견이나 사회적 여론을 거스르는 판결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형사재판의 특성에서 기인한 불만도 있을 수 있다. 형법상 유죄 판결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완벽에 가까운) 증거가 있어야 하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즉 무죄 판결을 해야 한다. 따라서 개별 사건의 입증 정도에 따라 판결이 국민 법감정에 배치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더 귀한 가치인 인권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헌법적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 법관의 판결도 오류가 있을 수 있기에 정치적 논평, 언론 기사, 국민 여론에 의한 비판은 필요하고 또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폭력이나 협박, 강압적 요소로서 사법의 독립을 침해하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권은 진행 중인 재판에 너무 관심을 갖거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재판은 기소된 피고인의 유무죄와 형사책임을 가리는 것이고 정치적 옳고 그름은 판단하지 않는다. 기소한 특검의 주장·입증 및 법관의 판단에 따르면 될 사법절차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삼권분립인데 정치는 정치, 사법은 사법 아닌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사법부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월리엄 크랜치 판사는 ‘무력에 좌우되지 않고 군중의 외침에 흔들리지 않은 채 침착하게 정의의 저울을 다는 것이 사법부의 의무’라고 했다. 독재정권에 맞서 인권을 선언하는 것이 용기이듯, 대중의 압력이나 일시적 여론의 광풍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법률을 적용하는 것도 큰 용기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중요 사건에 대한 선고가 잇달아 예정되어 있다. 담당 법관들은 전 인생을 걸고 그간의 공판 과정에서 조사된 구체적 증거관계와 법리를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판결이 선고되건 존중되어야 하고 그것을 토대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사법절차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국민이 행복해지고 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다. 거울과 깃털을 갖고 모든 진실을 꿰뚫어보며 심판하는 그리스 신화 속 명계(冥界)의 심판관 라다만티스(Rhadamanthys)나 염라대왕을 이 세상에서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최재경 객원논설위원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조윤선 집행유예 비난#법관의 판결 오류#라다만티스#삼권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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