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도움 못받는 홀몸노인에 생계+주거급여 月46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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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빈곤대책]‘非수급 빈곤층’ 기초수급자로

15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혼자 사는 문모 씨(81·서울 종로구)의 유일한 소득은 기초연금 20만6050원이다. 월세 16만7000원을 빼면 실제 손에 쥐는 건 4만 원이 채 안 된다. 고령인 데다 거동이 불편해 일을 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문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다. 6번이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그의 큰딸에게 부양 능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큰딸 역시 중증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느라 문 씨를 돌보기가 어렵다.

도움을 받기 힘든데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문 씨는 올해 11월부터 기초수급자가 된다. 정부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하면서다. 수급자가 되면 생계급여 28만9830원, 주거급여 17만3340원을 받는다. 병원 외래 진찰료는 1000∼2000원, 약값은 500원만 내면 된다. 입원비도 무료다. 10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문 씨 집을 직접 방문해 앞으로 어떤 혜택을 받는지 설명했다.

○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이날 발표된 ‘1차 기초생활보장 기본계획’의 핵심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처럼 정부 지원에서 소외된 ‘빈곤 사각지대’를 대폭 줄이는 데 있다. 다른 수급자보다 나을 게 없음에도 부양의무자나 재산 기준에 걸려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93만 명이나 된다. 3년간 4조3000억 원을 투입해 비수급 빈곤층을 최대 60만 명 줄이고, 기초수급자는 90만 명을 더 늘린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현재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신이 가난한 것은 물론이고 △부모나 자녀 등 부양의무자가 아예 없거나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여야 한다. 문제는 실제 가족 관계가 끊겨 부양의무자가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데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해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내년 10월 주거급여에 한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한다. 부양의무자인 부모와 자녀의 소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본인의 소득과 재산만 따져 주거급여를 지급하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90만 명이 새로 주거급여를 받는다.

또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이 있는 가구면 부양의무자 기준과 무관하게 생계와 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다. 올 11월부터 소득 하위 70% 이하면서 부양의무자와 수급자 중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이 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2022년까지 6만6000명이 생계급여를, 18만7000명이 의료급여를 새로 받는다.

○ 비현실적인 재산 기준 완화

충북 제천시에서 초등학생인 딸과 단둘이 사는 기초수급자 A 씨(45)는 최근 지인이 2009년식 중고 소형차(1600cc 이하)를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차량이 생기면 기초수급 선정 기준이 되는 소득인정액(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이 갑자기 늘어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현재 자동차에 대한 소득 환산율은 월 100%다. 예컨대 500만 원짜리 차량을 보유하면 월 소득이 500만 원이라고 계산하는 식이다. 단 1600cc 이하 소형차 중 10년 이상이거나 가액이 150만 원 미만이면 소득 환산율이 월 4.17%로 크게 낮아진다. 하지만 이 기준도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이 많아 내년부터는 특례 대상을 1600cc 이하 차량 중 7년 이상이거나 350만 원 미만까지로 완화한다. 부양의무자의 예금, 자동차 등 재산의 소득 환산율은 현재 월 4.17%에서 2022년 10월부터 2.08%로 낮아진다. 이에 따라 4만 명이 새로 의료급여를, 2만 명이 생계급여를 받는다.

제도 개선 후에도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강화했다. 기준 중위소득(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세웠을 때 가장 중간에 있는 가구 소득) 30% 이하인데도 수급자에서 탈락한 경우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생활보장위원회’를 열어 지원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 교육급여 최저교육비의 100% 지급

보장 수준도 현실화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교육급여다. 현재 초등학생에게는 연간 부교재비로 4만1200원만 지원한다. 중고교생은 부교재비 4만1200원에 학용품비 5만4100원을 더해 총 9만5300원을 지급한다. 최저교육비의 20∼30% 수준이다. 정부는 교육급여를 매년 올려 2020년 초등학생 1인당 20만3000원을, 중고교생은 29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주거급여는 실제 임대료와 건설공사 인상률을 반영해 인상한다. 주거급여 대상은 현재 기준 중위소득 43%에서 2020년 45%로 확대한다. 의료급여는 전날 발표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과 연계해 본인부담을 줄여나갈 방침이다. 생계급여는 올해보다 1.16% 증가한 135만5761원(4인 가구 기준)이다.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사다리’도 강화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취업, 창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현재 자활 일자리 5만 개를 2020년까지 5만7000개로 늘린다. 인센티브 차원에서 주는 자활급여도 인상한다. 34세 이하 청년 빈곤층이 10만 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30만 원을 얹어주는 자산형성 지원 사업을 신설한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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