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목수가 만났을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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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에서 예술까지’ 전시회… 흙과 나무의 컬래버레이션

10일 서울 종로구 백악미술관에서 김시영 도공(왼쪽)과 이정섭 목공이 자신들이 만든 가구와 흑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0일 서울 종로구 백악미술관에서 김시영 도공(왼쪽)과 이정섭 목공이 자신들이 만든 가구와 흑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른바 ‘SKY’ 출신으로 강원 홍천에 사는 도공과 목수가 한 공간에서 멋들어지게 만났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이 23일까지 여는 ‘재료에서 예술까지’ 전시는 김시영 도공(60)과 이정섭 목공(46)의 작품 50여 점을 한데 어울러 선보이고 있다. 흙과 나무의 ‘컬래버레이션’인 셈이다.

10일 백악미술관에서 만난 김 도공의 자기는 흑자(黑磁)였다. 그는 연세대 금속공학과 재학 중 화전민 터에서 발견한 검은 파편의 매력에 빠져 흑자를 만들어 왔다. 푸른 바다색, 메탈 색, 하늘의 별자리가 고스란히 담긴 듯한 검은색…. 그중 한 흑자는 윗부분이 녹아내린 듯 찌그러져 있었다.

“아, 가마에서 불 온도를 계속 높여봤더니 저렇게 꺼져 내렸어요. 그런데 산에 가보면 바위 모양새들이 신비롭잖아요. 우리는 그동안 반듯하고 예쁜 형태의 도자만 익숙하게 봐 와서 그렇지, 저 형태도 자꾸 보면 좋아 보일 것 같아요.”

이 목공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강원 태백의 한옥학교에서 집짓기를 배우며 목수가 됐다. 2002년 그가 홍천에 세운 내촌목공소는 꽤 유명해졌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선보인 참나무 가구 탁자는 ‘과연 가구 맞나’ 싶을 정도다. 긴 나무 판 10여 개가 터벅터벅 쌓여 있는 게 아이들 장난감 ‘젱가’를 떠올리게 했다. 심플함의 ‘끝판 왕’이다.

“인터넷을 보면 이 세상 디자인이란 디자인은 다 있어요. 그런데 그 디자인이 저 개인에게는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잘 깎은 기단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죠. 몸의 움직임을 통해 얻어지는 게 소중해요. 우리가 마크 로스코(1903~1970·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그림 앞에서 감동을 받는 건 빨강과 흰색이 만나는 오묘한 지점, 즉 고귀한 노동의 결과 때문 아닐까요.”

전시를 큐레이팅한 정영목 서울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흙과 나무의 물질 자체의 본성에 천착했다”며 “도자와 가구가 생활 기기로서 조형적으로 윤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도자와 가구의 미래를 물어봤다. “백자와 청자만큼 자연을 담은 흑자도 사랑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김 도공) “한 치 앞도 모르는데 가구의 미래를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양심 있는 작가라면 계속 새것을 추구해야겠죠.”(이 목공)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재료에서 예술까지#인사동 백악미술관#도공#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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