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그녀는 끝없이 죽고 또 산다… 노래속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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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9일 수요일 흐림. 난파.
#258 Lana Del Rey ‘Lust for Life’ (ft. The Weeknd) (2017년)

주황색과 분홍색. 파란 낮과 검은 밤을 가르려 나타난 노을의 옷깃은 거짓말 같은 색채다. 아름답고 덧없다.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이렌 같은 미혹의 노을을 봤다. 영화 ‘라라랜드’에도 나온 그리피스 천문대 옥상에서 할리우드 사인 쪽을 바라볼 때 하늘의 정령은 꿈결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할리우드 사인은 홑이불을 덮었다. 미욱한 창조자들이 사는 인간계를 굽어보더니 노을은 말없이 옅어져 갔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라나 델 레이(본명 엘리자베스 그랜트·32·사진)는 노을의 노래를 부른다. 거대한 칠흑덩어리 밤이 엄습하기 직전. 불길한 핑크. 검은 물에 젖어 무거워진 분홍 솜사탕같이 느리고 슬픈 목소리. ‘Gloomy Sunday’만큼이나 황홀한 무기력 찬가. 부딪쳐 난파되고 싶은 노래들.

레이가 2년 만에 발표한 신작 ‘Lust for Life’(삶에의 욕망)는 제목처럼 또 한 번 이율배반의 강물이다. 자신의 여신 같은 미모에서 그가 열심히 자아내는 것은 뜻밖에 나르시스 같은 자기 파괴, 파국의 예감. 1980년대 컬러TV를 뮤직비디오는 흉내 냈다. 흐려서 꿈속 같은 화면 속에서 레이가 할리우드 사인 위에 올라 노래한다.

‘할리우드 사인의 H에 올라/이 훔쳐진 순간들/세상은 나의 것/여기엔 아무도 없어/우리 둘 외에는/7월처럼 날 영원히 데워줘….’

남성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 위켄드와 주고받는 절창은 발레의 2인무처럼 고조된다. 밴드 포티스헤드의 느린 주술에서 영국의 안개를 걷어낸 뒤 캘리포니아의 노을을 더한 걸까. 라나 델 레이가 스케치한 세계의 끝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레이는 일찍이 자신의 오른손 측면과 약지에 ‘아무도 믿지 마(trust no one)’와 ‘젊었을 때 죽다(die young)’란 문신을 새겨 넣었다. 노래 속에서 그는 끝없이 죽고 또 산다. 밤은 낮에, 낮은 밤에 길을 터준다. 찬란한 찰나. 환상은 반짝이고 달콤함은 아직 이 세계에 있다.

임희윤기자 imi@donga.com
#lana del rey#lust fo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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