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인찬]북한에 ‘공짜는 없다’는 걸 알려줘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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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정치부 기자
황인찬 정치부 기자
“조사 시작이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600만 달러 지원하나요?”(기자)

“아직 결정 안 났습니다. 다만 지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습니다.”(통일부 관계자)

통일부가 북한에 600만 달러를 건네는 것을 두고 답답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올해 초 유엔인구기금(UNFPA)을 통해 우리 정부에 “인구 총조사에 쓰겠다”며 해당 금액을 요청해 왔는데 6개월 넘도록 지원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UNFPA는 경색돼 가는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불편한 상황이다.

북한은 자금과 전문적인 인력, 조사 장비의 미흡 등으로 자력으로 인구 총조사를 펼치지 못하고 UNFPA의 도움을 받아 인구 조사를 해왔다. 10년 전인 2007년 10월 시행한 인구 시범조사에 정부는 4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북한 통계는 우리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해당 금액은 조사 전문가를 고용하고, 차량과 컴퓨터 등 집기를 마련하는 데 사용됐다.

올해 10월에도 북한의 인구 시범조사가 예정돼 있다. 북한은 이번엔 200만 달러 늘어난 총 600만 달러 지원을 우리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문제는 10년 전과 지금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2007년 노무현 정권이 지원을 약속했을 때는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남북 간의 교류가 활발하고, 남북 정상의 한반도 평화와 공동 발전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었을 때다. 이런 상호 이해의 노력들은 10·4 남북공동선언으로 결실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의 ‘베를린 구상’에 이은 남북 군사회담, 적십자회담 제의를 북한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지난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두 차례 쏘며 도발 강도를 높인 북한은 이제는 “남한 곳곳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폭언에 이어 “미군의 괌 기지에 미사일을 쏘겠다”며 핏대를 세우고 있다. 국제사회가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에 뜻을 같이하며 도발 자제를 요구했지만 이를 보란 듯이 걷어차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북한의 도발이 거세지고, 유엔 제재 결의마저 나온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통일부의 “긍정 검토”라는 입장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아닌 UNFPA에 지원하는 것”이라든가 “대북 지원이 아닌 통일부 내부 사업”이라는 납득하기 힘든 논리를 대기도 했다. 심지어 “사실 지원 금액이 얼마 안 되지 않냐”며 막말을 하는 직원이 있기에 기자가 “수십억 원이 적은 돈이냐”고 반박한 적도 있다.

정부가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 북한에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가운데 선택한 ‘전략적 모호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도 “이번엔 지원금 못 준다”고 단호히 얘기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으로도 비친다. 돈을 주겠다는 사람보다 받겠다는 사람이 당당한 것처럼 보여서야 되겠는가.

다가오는 10·4 남북공동선언 10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인구 시범조사가 예정돼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이번 기념일은 조용히 넘어가는 게 맞다. 기념일 선물처럼 은근슬쩍 600만 달러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제라도 지원 철회를 선언하며 ‘공짜는 없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도 좋을 것이다.

황인찬 정치부 기자 hic@donga.com
#북한 인구 총조사#유엔인구기금#unfpa#베를린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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