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퍼스트레이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는 활발한 사회개혁 활동으로 퍼스트레이디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퍼스트레이디로는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부속실 직원들도 뒀다. 1978년 법률로 예산이 확보돼 퍼스트레이디는 백악관 공식 직책이 됐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때부터 ‘한 사람 값에 두 사람을(two for one price)’ 구호로 똑똑한 아내 힐러리를 내세웠다. 힐러리는 이스트윙에 있던 집무실을 남편이 있는 웨스트윙으로 옮길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부렸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서 대통령 부인은 법적으로 어떤 공식적인 역할도 보장받지 못한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 세실리아가 리비아에 억류된 불가리아 간호사들의 석방을 위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나선 일도 있지만 대통령 부인의 공식적 역할에 변화를 가져오진 못했다. 대통령궁 안에 사무실과 비서실은 있다. 그러나 의전상의 권한만 지닐 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부인 브리지트 트로뇌에게 미국식 퍼스트레이디직을 주겠다고 하자 반대 여론이 거세다. 마크롱은 대선 전에 “만약 내가 당선되면, 아니 미안하다, 우리가 당선되면, 그녀(브리지트) 역시 역할과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가족을 보좌관으로 쓰지 못하게 개혁을 주도하면서 퍼스트레이디직을 신설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프랑스인 20만 명이 반대 청원에 서명했다. 연간 6억 원이 들어가는 참모와 비서, 경호인력 지원이면 됐다는 것이 그 나라 민심이다.

▷우리도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정한 법률이 없다. 제2부속실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그만큼 나서면 나선다고, 보이지 않으면 존재감이 없다고 뒷말을 듣기 쉽다. 눈에 띄지 않자 ‘그림자 내조’라는 말이 나온 적도 있다. ‘육영수 여사는 대통령 몇 걸음 뒤에, 이순자 여사는 대통령 바로 옆에 섰다’는 말처럼 변하기는 한다. 아직은 ‘(퍼스트레이디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무보수직’이라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 부인의 말이 틀리지 않는 듯하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브리지트 트로뇌#에마뉘엘 마크롱#퍼스트 레이디#대통령 부인의 역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