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시장 급성장…늦은 출발 한국 신약개발 인프라 확충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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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성장동력 제약산업

(1) 국내 인프라와 전문인력 실태
 
세계적인 회계법인 PwC는 올 2월 발표한 세계경제 예측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 규모가 2016년 세계 13위에서 2050년 세계 17위로 떨어진다는 전망을 내놨다. 2015년 전경련 조사에서 경제 전문가의 65%는 “한국경제는 위기 상황이며, 신성장동력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인력의 감소, 성장동력 부재가 경제 추락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국내 경제를 지탱한 산업이 주춤한 상태에서 미래먹거리 발굴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이런 측면에서 제약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약산업은 생명공학기술(BT),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이 집약된 최첨단 지식기반산업이다. 덕성여대 약대 신혜순 교수는 “제약산업의 발전은 약학과 연관 있는 기초 학문인 화학, 생명분야의 발전뿐 아니라 약이 상품화 되는 과정에 필요한 경영학, 법학 등 많은 학문과 연계돼 있다”고 말했다. 또 경제적인 면에서도 신약개발을 통한 국부(國富) 및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급팽창하는 글로벌 의약품 시장

제약시장은 규모가 크다. 전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4000억 달러로 2007년 대비 50%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같은 기간 반도체 세계시장 규모인 4500억 달러를 4배나 뛰어넘는 규모다. 세계 의약품 시장은 미국 독일 영국 스위스 일본의 제약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 상위 글로벌 20개 제약회사들은 2014년 세계 의약품 시장의 총매출액인 9365억 달러 중 56.3%를 차지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

과거 세계 의약품 시장은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하는 중이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는 고지혈증 치료제인 리피토 한 품목으로만 2010년 129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자동차 94만 대를 수출한 효과와 맞먹는다. 한국의 제약기업들도 이 시장을 노리고 있다. 한미약품, 셀트리온 등이 활발한 R&D를 통한 신약 개발로 성과를 내고, 삼성이 2010년부터 바이오헬스 분야에 30조 이상 집중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먼게 우리의 냉정한 현실이다.

제약산업은 매력이 많다. 영업이익률이 산업 전체(2.39%)의 5배인 12.3%나 되는 알짜 산업이면서도 10조 원의 매출 증가가 13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정도로 고용유발 효과가 크다. 또 직·간접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매출의 3배에 이른다.

정부도 제약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34번째로 제시한 ‘고부가가치 창출 미래형 신산업 발굴 육성’에는 제약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의지도 담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성주 국정기획자문회의 전문위원 단장은 “문재인 정부는 제약바이오 산업을 국가의 중요한 미래형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다. 이를 위해 펀드 조성을 하고 기초연구 분야 및 상품화 관련된 기술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다. 신설되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 약학연구 인력 육성 시급

제약산업의 발전은 정부의 정책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의약품의 안정성 확보와 특허권 보호를 위해 정부의 관리 감독은 필요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국가 주도로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재정이 약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제약산업 영향력은 어느 나라보다 크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강하다 해도 제약산업의 토양이 되는 인프라가 허술하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 제약 선진국 중 하나인 일본은 약학전문인력 배출-제약기업의 R&D활성화-신약개발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

보통 신약개발은 후보물질 발굴로부터 시판에 이르기까지 15년 정도 걸린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 낮은 성공률이 신약개발을 가로막는 요소이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과 관련 산업의 발전을 이끌기에 ‘꼭 해야만 되는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제약회사들은 신약개발이 미래 먹거리임을 인식해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한국 BMS 제약 조혜경 전무는 “제약산업이 발전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제약산업에 대한 법과 규제는 과학이라는 특성을 감안해서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쪽으로 이뤄져야한다. 둘째, 전문 R&D 인력이 필요하다. 산업체에서는 충분한 연구 인력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약대에서 제약산업의 비전과 기회를 알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진출 인력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약대 교수는 “제약기업에는 필요 약사의 10% 정도만 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 5월 발표한 ‘2017년 주요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전망’ 연구결과에 따르면 2030년 약사는 1만 명, 의사 7600명, 간호사 15만8000명이 부족한 반면 치과의사는 3000명, 한의사는 1400명이 과잉 공급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약사 부족인력은 총 면허 등록 인원인 7만 명의 15.2%나 돼 제약산업 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를 주도한 오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약사 부족으로 늘어나는 의료서비스 분야의 대처가 안되고 미래의 산업에 의학, 약학, 생명과학의 융복합을 통해 대처하는 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건복지부는 적정 규모의 의사, 약사, 간호사가 의료현장에 충원될 수 있도록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관리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예정이다.

교육인프라가 약학교육 질 좌우

보건의료인력의 관리는 대학 입학정원 관리에서부터 시작된다. 2017년 기준 약대의 입학정원은 1700명으로 의대 입학정원 3058명의 55.6%, 간호대 입학정원 1만9183명의 8.9% 수준에 그치고 있어 제약산업의 기초인 약학 전문인력 증원이 시급한 형편이다. 약학전문인력 배출도 부족한 데 개국 약사의 비율이 제약 선진국에 비해 높은 것도 제약산업의 인프라를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체 약사 중 연구 약사의 비율이 미국 44.6%, 일본 56.4%이지만 한국은 22.5%에 불과해 연구할 약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개국 약사는 과잉인 인력 미스매치가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제한적으로 쓰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균희 연세대 약대 교수는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의 R&D 투자금액이 세계적인 기업과 비슷한 수준인 매출액의 15∼20%에 이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바이오 신약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데 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부족한 약학전공자를 늘려주고 약학전공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우리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약학교육은 인문학, 자연과학과의 융복합을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다. 의대, 자연대 등 약학 교육에 필수적인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학들을 중심으로 전문 약학 연구 인력 양성 기반을 확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이렇게 생각한다
 
신약개발은 창조작업… 융복합 리더가 이끌어야
 
이종욱 대웅제약 대표이사 부회장
이종욱 대웅제약 대표이사 부회장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가 국가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산업에 집중 투자해야 할 때다. 신약개발을 통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제약업이 그렇다. 제약 산업의 부가가치율과 1인당 부가가치액은 일반 제조업의 1.5∼2배에 달하며, 경제적 파급효과는 발생매출의 3배에 이른다. 또한 10조 원의 매출증가는 13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전 세계의 의약품 시장은 2007년 이후 해마다 5.3%라는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현재 1100조 원에서 2020년 1500조여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식집약적인 신약개발은 고급인력의 양성과 공급이 성패의 관건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고급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제약기업만이 치열한 신약개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우리가 신약개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신약개발 관련 전문가를 많이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 대학에서 신약개발 전문가로서의 약학전공자를 많이 키워야 한다.

우리는 2011년 6년제 약학교육을 시행하면서 약대 신설을 통해 약대 입학생의 정원을 늘렸다. 하지만 제약기업의 약사 및 약학전공자가 태부족인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조만간 개선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신약개발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약학대학을 추가로 신설해서라도 임상약학자와 신약개발 전문 약과학자의 배출을 늘려야 한다.

약학대학교육은 화학 물리 생물 등의 기반 인프라와 의대, 병원의 연계인프라가 한 장소에서 갖추어진 여건에서 교육을 받을 때 본래 취지의 연구약사, 임상약사 양성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화학적 물성과 기초개념이 필수적인 약화학과 더불어 인체병태생리, 약물치료학을 배우고 실습해야 하는 약대 교육은 이러한 기반 인프라 없이는 어렵다. 약학대학교육에 적합한 인프라를 갖춘 대학에서 선진 연구약사, 임상약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약 산업에도 임상분야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임상분야에서는 임상의사와 더불어 임상시험, 규제분야 등에 선진임상약사 교육을 받은 약학전공자가 주역이 된다.

신약개발은 과거에 없던 물질을 만들어 내는 창조 작업이므로 앞으로의 약학교육은 융복합 리더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약사와 MBA라는 두 개의 전문학위를 약대교육에서 획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약대교육의 연한을 4년 또는 6년으로 가변성 있게 조정하고, 그 교육과정 안에 융복합 리더 양성까지를 담아내는 교육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제약 산업과 우리의 경제재도약을 위해 시급히 필요하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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