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신용석]기후변화 온난화시대, 산과 함께 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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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신용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짧게 지나간 집중호우가 지역마다 생채기를 냈지만 산과 계곡에 충분한 물을 머금게 하지는 못했고,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가더라도 후끈한 증기가 숨을 답답하게 한다. 이곳 지리산에도 전에 없던 따가운 여름 기상이 등산객들의 표정을 지치게 만들고, 아스팔트 위에서 이글거리던 아지랑이가 산언저리까지 찾아와 아열대 표정을 짓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이미 우리 곳곳에 찾아와 확실하게 정착하고 있다. 기후변화시대엔 자연을 즐기는 방식도 기존의 습관에서 벗어나 새롭게 대비하고 적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조건 정상으로 치닫는 정복 산행, 쉼 없이 체력을 탕진하는 속도 산행, 목적지 정보와 경험이 부족한 ‘묻지마 산행’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아열대 기상에서 예전과 같은 정복·속도·묻지마 산행은 탈수와 탈진 현상을 가속화해 더 많은 안전사고를 유발한다. 산행에서 기대하는 건강은커녕 노화를 촉진하게 된다. 특히 산행 중 음주는 체온을 더욱 높이고 자제력을 흩뜨려 짜증과 사고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이제는 바뀐 환경에 맞춰 스피드를 내세우는 ‘등산’이 아니라, 슬로(slow)를 즐기는 ‘탐방’을 하자. 사람도 많고 자연도 괴로운 산의 정상 대신에 산자락과 산마을에 어우러진 자연과 문화를 천천히 깊게 들여다보는 생태·문화탐방을 하자.

전국 22개 국립공원에는 자연과 문화를 가까이 접하면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자연관찰로와 해설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그곳엔 자연을 닮은 해설가와 레인저들이 탐방객들이 지나치거나 놓친 무궁무진한 자연의 가치와 문화의 지혜를 자세히 안내해주고 있다. 또는 배낭을 가볍게 하되 책 한 권 넣어 호젓한 숲 그늘에서 독서삼매에 들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자연의 음악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빠져보자.

한편 사람들이 대중목욕탕처럼 즐기는 계곡 바닥에도 많은 생물들이 숨죽이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다. 그들의 삶도 보장하면서 온몸을 서늘하게 하는 탁족(濯足)으로 생물들과 공존하는 것은 어떨까. 온몸을 담그는 세신(洗身)은 곤란하되, 비누를 쓰지 않는 세안(洗顔)도 좋고, 세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씻어내는 세이(洗耳)도 좋다. 그렇게 깨끗하게 이용한 물속에 물 밖의 자연이 나와 함께 들어앉은 거울 같은 풍경도 감상하면서 말이다.

이제 싫든 좋든 그간 누려온 예측 가능한 기후의 시대와는 작별을 하게 되었다. 바뀐 환경에 대비하고 적응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자연의 참모습과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어우러진 국립공원 슬로 탐방을 추천한다. 가족, 가까운 이들과 건강도 챙기고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누리는 저마다의 슬로 탐방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특히 50주년을 맞은 지리산국립공원의 자연과 문화 위에서 진정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탐방을 모색해 보길 진심으로 권해드린다.

신용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폭염#지구온난화#기후변화 온난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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