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아무리 못나도 서민 노후자금 손대겠나” 최후진술서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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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결심 공판

최후진술 적은 녹색 공책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결심 공판을 마친 뒤 최후 진술을 적은 녹색 표지 공책을 들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이 공책은 서울구치소에서 파는 360원짜리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최후진술 적은 녹색 공책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결심 공판을 마친 뒤 최후 진술을 적은 녹색 표지 공책을 들고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이 공책은 서울구치소에서 파는 360원짜리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7일 오후 3시 25분경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 피고인석에 서서 공책에 직접 쓴 최후 진술을 읽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의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끝내 눈물을 보였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이 부회장은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 모든 임직원들, 많은 선배님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며 “창업자이신 저희 선대 회장님 그리고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신 회장님의 뒤를 이어받아 삼성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중압감에 저도 나름대로 노심초사하며 회사 일에 매진해 왔다”고 말했다.

또 이 부회장은 “성취가 커질수록 국민과 우리 사회가 삼성에 건 기대가 더 엄격하고 더 커졌다. 이번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그런 부분이 많이 드러났다.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다”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앞서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의 결심 공판 시작 직후 박영수 특검(65)은 14분간 논고문을 읽은 뒤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이어 삼성 측 변호인 송우철 변호사(55)가 1시간 동안 최종 변론을 했다. 양측이 팽팽히 맞선 핵심 쟁점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을 3차례 독대하며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1) 승마 지원이 청탁의 대가였는지 △이 부회장이 승마 지원에 개입했는지 등이었다.


○ 이재용, 결백 호소하며 “부덕의 소치”


이 부회장은 약 5분간 최후 진술을 하며 감정에 북받쳐 여러 차례 헛기침을 하고 물을 마셨다. “구속 수감된 6개월간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돌이켜 보니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았고 챙겨야 할 것을 챙기지 못했다”면서 재판부를 향해 결백을 호소했다.

이 부회장은 “제가 제 사익을 위해서나 저 개인을 위해서 박 전 대통령에게 뭘 부탁한다든지 대통령에게 그런 기대를 한 적이 결코 없다”며 “제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도 우리 국민들의, 우리 서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욕심을 내겠느냐”고 강조했다.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밀어붙였다는 특검 측 공소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어 “너무나 심한 오해다. 정말 억울하다. 이런 오해와 불신이 풀리지 않으면 저는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 이 오해만은 꼭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 “박근혜, 정유라 지원 요청” vs “특검, 거짓 인정”

박 특검은 5600자 분량의 논고문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정유라 승마 지원 등을 요구받은 피고인이 대통령의 직무상 도움에 대한 대가로 거액의 계열사 자금을 횡령해 300억 원에 이르는 뇌물을 공여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삼성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목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승마 지원과 재단 출연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 측 송 변호사는 2만5400자 분량의 최종 변론을 통해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과 2015년 7월, 그리고 2016년 2월 박 전 대통령을 3차례 독대한 자리에서 단 한 차례도 경영권 승계 등의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송 변호사는 특검이 확인되지 않은 독대 상황을 추측해 범죄 정황으로 내세웠다고 공격했다. 특검이 당초 공소장에 2016년 2월 세 번째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정유라를 잘 지원해 줘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잘 지원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기재했다가 이달 4일 공판에서 “정확한 워딩(말)에 대한 증거는 없고 취지를 그렇게 표시한 것”이라고 해 거짓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정 씨에 대한 승마 지원은 박 전 대통령의 요청 때문이 아니라 최 씨의 강요 내지 공갈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5분 만에 대통령 도움 요청… 말 안 돼”

박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9월 첫 번째 독대 때부터 경영권 승계를 고리로 최 씨가 요청한 재단 설립과 정 씨의 승마 훈련 등을 이 부회장에게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몰두했다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하지만 삼성 측은 “특검이 이 사건 재판의 출발점인 ‘승계 작업’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재판부에 제출하지 못했다”며 “그러한 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또 송 변호사는 1차 독대에 대해 “대구창조경제센터 개소식에서 사전 예고도 없이 대통령의 일방적 요구에 따라 불과 5분도 안 될 정도의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승계 작업에 대한 도움을 대통령에게 요청하면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해치웠다는 것이 도대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주장이냐”고 반문했다.

또 송 변호사는 첫 번째 독대에서 경영권 승계 청탁과 뇌물수수의 합의가 있었다면 그 직후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이 무산된 사실이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만약 25일 1심 선고에서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이 부회장이 승마 지원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경우 이 부회장은 무죄 또는 가벼운 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뇌물과 횡령, 재산 국외도피, 위증 등 5가지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징역 5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

권오혁 hyuk@donga.com·김윤수 기자
#이재용#공판#최후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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