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반가운 편지 한통에 종일 설레던… 옛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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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Sivales bene est, ego valeo·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라틴어 수업(한동일·흐름출판·2017)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쓴 게 10년은 된 것 같다. 군대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면 전화보다는 편지를 선호했다. 고이 쓴 편지를 봉투에 넣고 풀로 입구를 봉하면 보이진 않아도 마음을 떼어 놓은 것 같았다. 늘 ‘보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을 더 힘줘서 썼다. 상대방 주소와 이름이 삐뚤빼뚤하지 않게 경필대회처럼 온 정신을 집중했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우표 붙이는 것까지 정성을 다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로 시작하는 김광진의 ‘편지’(2000년 3집 수록)가 있다. 가사는 ‘배려’에 대한 내용이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 본인의 감정은 숨긴 채 물러나는 남자 얘기다. 클라이맥스는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구절이다.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외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건 나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마음은 키보드나 스마트폰이 아닌 손으로 담을 때 더 정중하고 차분하게 전달된다. 로마인들은 편지를 쓸 때 “그대가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인사를 애용했다. 상대방의 안녕으로 내 안부를 대신하는 마음이 따뜻하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나 자신도 돌볼 여유가 없는 시대, 반가운 편지 한 통으로 종일 가슴 설레던 예전이 그리워진다.

동아시아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저자는 라틴어 어휘뿐 아니라 유학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아낌없이 공유한다. 말을 건네듯 경어체로 쓰인 책은 삶과 죽음, 관계와 태도 등 살아가면서 마주할 문제들에 대해 ‘내가 깨달은 게 이거야’가 아닌 ‘제가 배운 지혜가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식으로 겸손하게 풀어낸다. 꼭 편지 같다.

진심이 담긴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1999년 국내 개봉)에서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는 엉뚱한 곳에 전달되지만 받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몰랐던 사랑을 발견하게 해준다. 영화 속 주인공은 연인이 조난당한 설산을 향해 편지를 쓰듯 사랑의 인사를 외친다.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쓰.’(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냅니다) 오랜 만에 편지를 써보자. 각박한 일상, 잊고 있던 배려와 사랑을 짜내서.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책#라틴어 수업#한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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