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문재인은 오너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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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석방 한명숙 전 총리
수감 교도소 면회객 쇄도… ‘감옥 계급장’ 따 몸값 상한가
文 집권 후 좌파 공간 넓어져… ‘국가 전복’ 이석기 양심수 둔갑
대통령, 지지세력 합창할 때… 독창 변주해도 君王無恥

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한명숙 전 국무총리(73)가 23일 석방된다. 한 전 총리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수표, 달러 등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20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300만 원의 형이 확정됐다. 나흘 뒤인 8월 24일부터 역대 총리 가운데 처음 수감생활을 시작했으니 만기 출소다.

출소를 앞둔 한 전 총리가 수감된 의정부교도소에 면회객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뒤 이명박 정부에서 기소돼 박근혜 정부에서 수감된 한명숙. 친노(친노무현) 진영에서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박해의 아이콘이다. 칠십 노구를 이끌고 징역 만기를 채웠으니 그 애틋함이 더 절절하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는 2013년 9월 16일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현직 국회의원인 점 등이 참작돼 법정구속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수감될 때까지 임기의 절반가량인 1년 11개월 동안 19대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실제 한명숙을 만나보면 온화한 얼굴에 차분한 말투로 전혀 투쟁적인 인상이 아니다. 그러나 진보좌파 진영에서 그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77)는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으로 1968년부터 13년간 형을 살았다. 한명숙이 박 전 교수로부터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친노 원로로 한국 좌파의 명맥을 잇는 정통성(?)을 가진 데다 ‘감옥 계급장’까지 딴 한명숙이 진보좌파 진영에서 차지하는 몸값은 출소 후 상한가를 칠 것이다. 그러나 석방돼도 피선거권이 제한돼 복권(復權)을 받지 않는 한 10년 동안 선거 출마가 불가능하다. 2027년이면 그의 나이 83세.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머지않아 한 전 총리를 복권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명숙을 복권시켜 준다 해도 문 대통령을 좌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보라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철수한 피란민의 자식이자 특전사 출신인 그는 태생적으로 좌파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집권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좌파들의 활동공간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미 좌파 진영에선 대한민국을 폭력으로 전복하려고 선동했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나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해 3년형을 받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양심수’로 둔갑했다. 공공연히 이들의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그런 오판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북한이 지난달 28일 밤 2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자 문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1개 포대의 나머지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를 지시했다. 진보좌파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으나 정권 오너의 면목을 처음으로 보여준 순간이라고 나는 본다.

사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친노가 얼굴로 내세운 ‘대선용 기획상품’이었다. 대선 뒤 4년여를 거치며 친문(친문재인) 세력이 성장했지만, 문 대통령이 이 정권의 진정한 오너냐는 물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너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지지세력 내부의 반발에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밀어붙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 평택 주한미군기지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밀고 나간 노무현은 오너였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였으나 오너 출신은 아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허약한 오너십을 보였다. 오너인 줄 알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에 놀아난 ‘가게무샤’였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밀린 숙제라도 하듯, 4대강 청산과 비정규직 및 최저임금 문제, 탈(脫)원전 등 진보좌파의 어젠다를 100대 과제니 뭐니 하면서 쏟아냈다. 오너라면 자신만의 변주(變奏)와 독주(獨奏)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보이질 않았다.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도 알레르기를 보이는 지지자와 군통수권자의 역할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군왕무치(君王無恥)라고 했다. 국가통치와 국익을 위한 대통령의 변신은 무죄다. 사드 추가 배치를 언명(言明)했듯, 문 대통령은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진보좌파의 합창과는 다른 독창을 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서 흔히 보듯 창업 2세는 창업자의 가신들을 쳐낸 뒤에야 비로소 명실상부한 오너가 된다. 필요하다면 친노일지라도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 한다. 꼭 한명숙 사면 문제가 아니어도 좋다. 탈원전이든, 대북정책이든 문 대통령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더 많은 국민이 그를 이 정권의 진정한 오너로 믿고 힘을 보태줄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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