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72시간의 저체온 요법 사투… 84명의 신생아를 살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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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 치료 화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성인경 교수가 4일 의료진에게 저체온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성인경 교수가 4일 의료진에게 저체온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모 씨(30)는 최근 동네 산부인과 병원에서 38주 만삭으로 14시간 산통 후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는 울지 않았고 피부는 창백했다. 사지는 축 늘어졌다. 인근 종합병원으로 급히 보내진 아기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인공호흡기와 모니터를 달고 차가운 매트 위에서 72시간 동안 저체온 요법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입원 2주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아기를 살려낸 저체온 요법은 저온의 패드를 이용해 신생아의 체온을 33.5도로 낮춰 3일 동안 온도를 유지한 뒤 서서히 체온을 다시 높여주는 치료법이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성인경, 윤영아 교수팀이 2012년부터 5년간 김 씨 아기처럼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으로 입원해 저체온 치료를 받은 신생아 환자 102명을 18개월까지 관찰한 결과 82.4%인 84명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저체온 치료가 뇌신경 보호에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 결과는 최근 열린 대한신생아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 의사와 부모가 알아야 할 요법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태아의 뇌에 혈액이나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심한 뇌손상을 입는 질환이다. 선진국에서 신생아 1000명당 1∼4명이 발생할 정도로 많다.

이를 방치하면 사망률이 15∼25%에 이르고 생존하더라도 30∼50%는 뇌성마비, 간질, 발달지연 등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뇌에 저산소증이 생기면 대개 연쇄 반응으로 2차 뇌손상이 뒤따른다. 즉, 뇌의 염증 반응에 이어 뇌가 붓고 뇌세포가 죽는 등 심각한 뇌손상을 입는다. 설혹 아기가 생존하더라도 후유증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저체온 요법은 몸을 차갑게 해서 뇌에 생긴 염증을 막아 뇌의 2차 손상의 진행을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체온 요법은 성인 치료에는 상대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심정지로 산소공급이 중단된 뒤 심장 활동은 회복됐지만 치명적인 뇌손상으로 인한 혼수상태를 보이는 환자에게 많이 사용된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윤영아 교수는 “외국에서는 2005년부터 신생아 저체온 요법을 시작했고 2010년에 이미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의 표준 치료법으로 도입돼 널리 사용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신생아 치료에 도입된 지 불과 5년 정도밖에 안 돼 의사나 부모가 이런 치료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골든타임 6시간 내에 치료받아야

신생아 저체온 요법은 성인과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성인에겐 환자의 체온을 24시간 동안 32∼34도 정도로 낮췄다가 점차 높이지만 신생아는 33.5도에서 72시간 동안 유지한다.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은 아직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아 태어날 때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담당 산부인과나 소아과 의사가 먼저 출생 직후부터 신생아의 상태를 파악해줘야 한다.

만약 아기가 태어날 때 △호흡을 힘들게 하거나 △입술과 피부가 푸른빛을 띠는 청색증이 있거나 매우 창백한 경우 △몸이 축 늘어져 힘이 없거나 △팔다리를 움찔거리는 경련을 보이면 일단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의심 증상이 있다면 치료 골든타임인 6시간 내에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서 저체온 요법을 받아야 신생아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고 신경학적 후유증을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 치료 시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출생 후 6시간이 지나면 돌이키기 어려운 2차 뇌손상이 진행돼 저체온 요법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 교수는 “현재로서는 저체온 요법만이 신생아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에 대한 치료 효과가 입증된 유일한 방법이다”라며 “환자가 발생하면 속히 치료가 가능한 종합병원으로 6시간 이내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서울성모병원#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저체온 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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