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들의 잠 못이루는 여름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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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 공채 폐지 ○ 블라인드 채용 확대 ○ 정규직 전환 변수
계열사별 실적따라 자율 결정… 삼성 전체 채용규모 감소 우려
입사서류에 ‘스펙’ 못쓰게 하자… 자기소개서-면접 고액 학원 북적
두산-CJ 등 정규직 전환 선언… 기업 54% “신규채용 줄어들 것”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M취업코칭스쿨의 상담 테이블 4개가 취업준비생들로 꽉 찼다. 학원 관계자는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을 한창 강조하는 중이었다.

“이제 새로운 트렌드는 ‘구조화 면접’이에요. 블라인드 채용으로 서류에 스펙을 구체적으로 적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소개서 속 내용을 토대로 면접을 진행할 겁니다. 자기소개서가 그만큼 중요해진 거죠.”

이 학원은 이달 말 시작되는 주요 대기업 원서 접수를 앞두고 시간이 촉박하거나 자신감이 부족한 이들에게 ‘일대일 강의’도 해준다. 두 시간 동안 자소서를 함께 완성하는 강의다. 학원 측은 “완전히 대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다 써 드린다”며 상담을 마무리했다.

본격적인 하반기(7∼12월) 공채 시즌을 앞두고 삼성 그룹 공채 폐지, 스펙 기입을 최소화하는 블라인드 채용 확대 등 새로운 변수들이 추가되면서 취업준비생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특히 올해 2분기(4∼6월) 대기업(종사자 300명 이상)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은 이달 말부터 원서를 접수한다. 취준생들이 ‘20일간의 전쟁’에 돌입한 셈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6일 “수험생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채용 일정과 프로세스는 전년과 같이 유지한다. 다만 계열사마다 경영 실적에 따라 자율적으로 필요 인력을 정하기 때문에 그룹 전체 채용 규모는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삼성카드,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물산(건설 부문) 등 일부 계열사는 상반기(1∼6월)에도 공채를 진행하지 않았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하반기 삼성물산 공채를 기다리고 있다는 김모 씨(24)는 “그동안 삼성의 신입 공채 규모가 제일 컸는데 계열사별로 채용하면 당장 실무에 투입할 경력 위주로만 뽑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상반기에 취업하지 못한 인원까지 몰려 하반기가 경쟁이 더 세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고도 했다.

이달부터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블라인드 채용’도 취준생들에겐 큰 변수다.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등 민간 기업으로도 블라인드 채용을 확산한다는 목표다. 최근 구인구직사이트 ‘사람인’이 대기업 14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절반 이상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LG그룹 관계자는 “2014년부터 자기소개서에 블라인드 채용을 적용했는데 정부의 민간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이를 더 확대시킬 수 있을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했다.

바뀌는 채용 문화에 맞춰 가장 빨리 움직이는 곳은 역시 학원가다. 서울 강남의 한 스피치 학원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과 관련한 문의가 최근 2주간 크게 늘었다. 이틀에 한 명 정도이던 문의 전화가 요새는 하루에 두세 명씩으로 늘었다”고 했다. 이 학원은 면접 대비용 90분짜리 수업 1회에 20만 원을 받는다. 서류전형보다 면접 절차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수험생들의 불안한 심리를 겨냥한 것이다. 강남구 역삼동의 한 학원 관계자는 “삼성 등 대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하기로 확정짓는 순간 오픈하려고 ‘블라인드 채용 면접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취준생들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신입 공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파이가 줄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최근 사람인이 364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3.8%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해 신규 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두산, CJ, 한화 등은 이미 비정규직 수백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각각 선언한 상태다.

청년들은 그나마 새 정부의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 주문에 따라 대기업들이 채용 확대를 약속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조삼모사’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급속하게 성장하는 추세가 아니고 정원에 한계가 있다. 이번 하반기 때 채용을 늘리면 내년 상반기에는 또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김지현 기자
장용준 인턴기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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