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유람하며 ‘날밤 문학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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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끝난 ‘장르문학 부흥회’

장르문학 부흥회’에 참석한 가수 요조(무대 위 오른쪽)가 2015년 서울 종로구에 차린 자신의 독립서점 ‘무사’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장르문학 부흥회’에 참석한 가수 요조(무대 위 오른쪽)가 2015년 서울 종로구에 차린 자신의 독립서점 ‘무사’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승객이 탑승했는데 선장이 퇴근해 버려서 배가 출항을 못 하고…. 그래도 불편하고 당황스럽기보다는 주최자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어요. 그야말로 ‘장르문학’ 행사답네요.”

5일 오전 1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정박한 유람선 아라호 1층 공연장 무대에 오른 가수 요조가 말했다. 전날 오후 10시 시작해 이날 오전 5시까지 열린 장르문학전문출판사 북스피어의 ‘2017 장르문학 부흥회’. 강연자로 초대받은 요조의 솔직한 발언에 사회자로 나선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41)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김 대표는 2014년부터 출판사 홍보 겸 독자 서비스를 위해 여름마다 부흥회 행사를 열었다. 미스터리, 공상과학(SF), 판타지, 로맨스 등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독자, 작가, 출판 관계자가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2015년에는 강원도의 한 폐교, 지난해에는 경기 파주시 교하도서관에서 밤새워 작가 강연과 추리게임 등 특별한 프로그램을 즐겼다.

하지만 서울시 측의 장소 무료제공 제안으로 선택한 아라호는 행사 시작부터 뜻밖의 위기를 안겼다. 행사 기획사와 유람선 운영 주체의 소통 부족으로 인해 선장이 퇴근해버려 부랴부랴 다시 불러와야 하는 진땀 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강연장 디스플레이 설치를 위한 사전 준비 시간이 부족해 선상 추리게임 등 참가자 간 소통을 유도하려 한 이벤트 진행도 무산됐다. 김 대표는 “올해 행사는 망했다. 면목이 없다. 내년에는 무인도를 빌리든지 해서 반드시 이번 실패를 만회하겠다”고 말했다.

4일 밤부터 5일 새벽까지 서울 한강유람선 아라호에서 열린 ‘2017 장르문학 부흥회: 한강 선상 나이트’ 포스터 사진. 장강명 김탁환 작가,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왼쪽부터) 등이 배에서 참가자들에게 음료를 나눠주며 어울려 장르문학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북스피어 제공
4일 밤부터 5일 새벽까지 서울 한강유람선 아라호에서 열린 ‘2017 장르문학 부흥회: 한강 선상 나이트’ 포스터 사진. 장강명 김탁환 작가,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왼쪽부터) 등이 배에서 참가자들에게 음료를 나눠주며 어울려 장르문학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북스피어 제공
그럼에도 일정 차질에 정색하고 항의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참가자 150여 명 대부분이 북스피어의 책과 김탁환 장강명 등 참여 작가를 좋아하고 아끼는 동호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오전 4시가 넘어 시작한 마지막 순서 장강명 작가의 강연 시간에도 참가자들은 지친 기색 없이 강연에 귀 기울이고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가 강연 도중 차원이 다른 두 질량세계의 생명체가 교류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조니 익스프레스’를 보여준 뒤 “SF가 주는 ‘경이감’이란 뭘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한 남성 관객이 일어나 “일상생활의 고민을 잠시나마 하찮은 것으로 느껴지게 해 준다”고 답하며 ‘익숙한 대상을 다른 시야에서 바라보게 하는 SF의 전복적 상상력’에 대해 토론을 이어갔다.

회사원 김윤정 씨(34)는 “장르문학 팬은 아니지만 평소 관심이 많았던 작가들과 흥미로운 장소에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여겨 참여했다. 강연 중에 언급된 장르문학 작품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실패담’을 주제로 강연한 김탁환 작가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참여했다. 김 대표와 인연이 깊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러 왔지만 독자들과 야심한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장으로 존재를 경험하고, 실패의 경험을 때로 후회하고, 다시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가는’ 작가로서의 자아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2017 장르문학 부흥회#날밤 문학회#장강명#김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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