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잔향]글짓기 집짓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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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땅 위에 건물을 구상해서 지어 올리는 거지?”

나중에 자신의 딸이 건축가가 되길 희망한다는 한 선배가 물었다.

답할 자격 없는 대로 아는 범위 안에서 답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글 쓰는 이치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쓰고자 하는 내용에 합당한 단어와 문체를 선택해 문장을 구성하듯, 필요한 공간에 알맞은 형태와 재료를 찾아내 이어 엮고 비워내는 것.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소설이 되고 시가 되고, 집이 되고 공장이 되고.”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밤참을 만들다가 모든 일이 대개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엔 뭐든 아무것도 없다. 그 위에 찾아 엮어지는 재료의 성격과 방향과 크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글도, 공간도, 요리도, 음악도.

“건축가들이 르코르뷔지에를 추앙하는 까닭은 뭐지?”

선배가 다시 물었다.

역시 별 근거 없이 혼자 믿던 대로 답했다.

“공간의 근본적 역할과 가치를 일깨웠기 때문 아닐까요. 권력자나 부유한 이의 욕망을 위한 피라미드나 바벨탑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먹고 자는 생활공간의 소박한 효율에 대해 고민하는 게 건축가의 책무라고 알려준 사람.”

학부를 허덕허덕 졸업한 자의 얄팍한 감상이다. 하지만 대답을 하면서 ‘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되짚을 수 있어 좋았다.

지난주 한 출판사의 문학담당 편집자를 만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을 어떻게 읽었는지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

“전작은 대문에서 현관까지 한참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저택의 느낌이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대문과 현관 사이 공간이 간명하고 깔끔한 저택이 떠올랐어요.”

글인 듯 건축인 듯. 아무것도 없는 듯 어디에나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글짓기#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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