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연애-결혼-출산… ‘보통의 삶’이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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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무라타 사야카 지음·최고은 옮김/292쪽·1만3000원·살림

사람들은 인공수정으로 임신하고, 과학의 발달로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 아이는 개개의 가정이 아닌 집단 시스템을 통해 동일하고 고르게 ‘안정적인’ 환경에서 길러진다. 섹스는 희귀한 행위가 됐다. 특히 함께 사는 가족인 부부간에는 더더욱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편의점 인간’으로 지난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저자가 그린 세상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주제는 선명히 드러난다. 저자는 남녀가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정상적인 삶’으로 간주되는 데 대해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주인공 아마네는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행위, 즉 섹스를 한 결과 태어난 특이한 아이다.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아마네는 다른 이들과 같은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인간이 대량으로 태어나고 길러지는 세상은 영화나 과학소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상상력은 참신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비교적 흥미롭게 만드는 힘은 아마네의 성장 과정과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데서 나온다. 아마네는 만화 속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며 성장하고 수십 개의 캐릭터 인형과 연애한다. 결혼은 조건에 맞춰 함께 살 파트너를 고르는 선택 사항일 뿐이다. 첫 번째 남편과 아마네가 이혼한 건 그가 키스하고 스킨십을 했기 때문. 역겨움을 느낀 아마네는 곧바로 토해 버리고 경찰에 신고한다. 시부모는 남편에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인과 성행위를 하려 들다니”라고 비난한다.

아마네가 엄마에게 던지는 말은 저자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절규로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광기가 뭔 줄 알아? 바로 정상이라는 거야, 안 그래?”

독신에 비정규직인 편의점 직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는 저자가 따갑게 혹은 의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하는 듯한 작품이다.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봐 달라고. 차가운 그 시선을 거두어 달라고 말이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에서 벗어나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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