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유령수술, 병원장에게도 배상 책임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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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유명 성형외과 원장 등… 환자에 8795만원 배상 판결
치과-이비인후과 의사가 성형수술… 사기혐의로 형사재판도 진행 중

직장인 김모 씨(29·여)는 2013년 9월 서울 강남구 그랜드성형외과를 찾았다. 평소 콤플렉스였던 턱과 광대뼈 교정을 받고 싶어서였다. 전문의 A 씨는 김 씨에게 “내가 직접 수술을 하려 한다”며 친절하게 수술 방식을 알려줬다. 김 씨가 받을 수술은 얼굴뼈를 전기톱과 망치로 조각낸 뒤 다시 붙여 나가는 위험한 과정이었다. 김 씨는 서울에서 ‘빅3 성형외과’로 꼽히는 병원의 명성과 A 씨의 전문성을 믿고 780만 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수술은 실패했고 김 씨의 얼굴은 엉망진창이 됐다. 턱 모양은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고, 수술 부위의 감각도 이전에 비해 크게 무뎌졌다.

같은 해 12월 김 씨와 같은 병원에서 코와 쌍꺼풀 수술을 받은 여고생이 뇌사 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터지며 ‘유령수술(ghost surgery)’ 의혹이 불거졌다. 환자가 마취 상태에 빠졌을 때 성형외과 전문의 대신에 인건비가 싼 다른 의사가 몰래 수술을 집도했다는 것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의 조사 결과 유령수술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김 씨는 자신도 유령수술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랜드성형외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 씨는 의사 A 씨가 유령수술을 인정하고 양심선언을 한 점을 감안해 병원 측을 상대로만 소송을 냈다.

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임성철 부장판사는 김 씨가 그랜드성형외과 유모 원장(45)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 씨 등은 손해배상금과 위자료 등 총 8795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유 원장은 유령수술 의혹과 관련해 사기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유 원장은 2012년 11월∼2013년 10월 환자 33명에게 자신이 직접 수술을 할 것처럼 속인 뒤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겨 1억52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유 원장의 병원에서 유령수술에 투입된 의사들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라 치과 또는 이비인후과 의사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수술을 집도한 의사 대신 유령수술을 하도록 시킨 병원장에게 의료사고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유령수술이 병원장 주도로 장기적,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케이스”라며 “유령수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그랜드성형외과#유령수술#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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