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리 들으러 갔다 여름폭우를 만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4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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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아름다운 목요일 더 바이올리니스츠 시리즈’에서 김봄소리의 연주를 보고 듣고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그의 굵고 시원시원한 연주. 첫 곡 모차르트(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24번 F장조)에서의 상큼 발랄한 분위기는 슈만 1악장의 첫 패시지를 켜자마자 돌변했다.

격정이란 단어를 믹서기에 곱게 갈고 볶은 뒤 커피 필터로 걸러내면 이런 결정의 액체가 만들어지는 걸까. 1악장의 격렬한 감성의 진동, 3악장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그야말로 긴박해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격정의 결정체는 2부의 시마노프스키(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단조)에서도 손톱을 세웠다. 표정과 몸짓은 작았지만 활은 끝없이 길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직조한 음들이 관객의 마음을 쑤셔댔다.

드뷔시의 ‘아름다운 저녁’에 이어진 외젠 이자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카미유 생상스 왈츠 형식의 에튀드에 의한 카프리스 Op.52’는 김봄소리의 기교를 검증해주는 확인서와 같은 연주였다.


김봄소리의 연주를 들으면서 두 번째 놀라웠던 점은 그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었다. 음악적 구성은 분명 형식적이었으나 스토리는 완벽한 개연성을 띠고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오선지 위의 음표를 원고지의 문장으로 옮겨 놓은 느낌이랄지. 음악이 이야기가 되어 자꾸만 관객에게 말을 붙여왔다.

이날 김봄소리와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신창용의 연주도 대단했다. 강약, 속도, 감정 완급의 조절이 뛰어나 타건이 만들어낸 소리들이 유기체처럼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김봄소리의 소리를 1%도 잡아먹지 않고, 오히려 증폭시키며 색감을 돋보이게 만드는 솜씨는 반주자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엿보게 했다.

봄의 소리를 기대하고 갔다가, 여름의 폭우에 압도당한 기분.

멋지고, 유쾌한 연주회였다. 한여름에 들어도 너무나도 근사한 봄소리였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구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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