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송찬욱]공수만 바뀐 여야, 판박이 안보 남탓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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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욱·정치부
송찬욱·정치부
“NSC(국가안전보장회의)도 일본보다 늦었고, 미국 정상과의 통화도 일본보다 늦었다.”

지난달 2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다. 북한 4차 핵실험 이틀 뒤인 지난해 1월 8일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전병헌 당시 최고위원(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했던 말이다.

전 정무수석은 당시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장 최전방에 있고 가장 직접적인 당사국인 우리 정부는 왜 이렇게 느림보이고 거북이 대처인가”라며 “주변국 눈치만 보면서 한발 늦게 끌려 다니기만 하는 무능력, 무책임, 무기력 ‘3무 외교’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북한의 핵실험 감행 한 달 뒤에야 통화하는 등 발 빠른 대처를 못 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1년 7개월 전 박근혜 정부를 향한 전 수석의 비판은 이제 문재인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NSC 개최는 일본보다 늦었고, 도발 엿새가 지난 3일에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52분간 통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공조를 위한 통화를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의제도 없는데 무조건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한미 정부 간 동맹에 가느다란 금이 간 거 아닌가”(한국당 나경원 의원)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안보에 여야는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초당적으로 대응해야 할 안보 문제에 여야가 바뀌면 위치만 바꿔 상대를 공격하는 게 고작이다. 실질적인 논의는 하지 않고 비판만 하는 우리 정치의 ‘민낯’을 또 보여주고 있다. 전날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한국당 민경욱 의원은 “문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무능, 무기력, 무책임의 ‘3무 정권’”이라며 전병헌 수석과 똑같은 말로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한 참모는 사석에서 “언제든 필요할 때 통화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이 미중 정상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안보 위기 속에 한국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국민이 안심하려면 안보 문제만큼은 여야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정부와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필요하다.

송찬욱·정치부 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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