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거부권 행사’ 봉쇄한 美의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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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민주, 러제재 법안 압도적 통과… NYT “트럼프 거부권 행사했더라도 의회서 뒤집어 망신 당했을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에 미국 의회가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해임 논란부터 2일(현지 시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트럼프가 서명한 대(對)러시아 제재 법안까지 미 의회는 초당적 협공을 벌이며 트럼프의 돌발적인 통치 스타일과 친(親)러 행보에 경고 카드를 꺼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일부 의원들은 취임 6개월 만에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트럼프와 공개적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서 폼을 내며 법안이나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이번 대러 제재 법안을 서명한 이날 별도의 기자회견은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가운 관계를 갖기를 공개적으로 희망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장면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지난해 미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를 벌하기 위한 제재를 법제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은 외교정책 권한을 대통령에게 준다. (법안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서도 “국론 통합 차원에서 서명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번 법안에 서명한 데는 ‘국론 분열’에 대한 우려보다 의회가 대통령을 사실상 겁박한 것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법안이 하원에서 찬성 419표(반대 3표), 상원에서 찬성 98표(반대 2표)로 압도적으로 통과한 점을 들며 “트럼프가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도 의회가 이를 뒤집는(양원 3분의 2 찬성 필요) 망신을 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한 반러 감정을 갖고 있는 민주·공화당 의원들의 공동전선에 행정부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충동적인 통치 스타일을 선보이며 세션스 법무장관을 공개 비판하자 공화당 의원들은 중진을 중심으로 “세션스를 지지한다”며 집단행동에 나서 결국 세션스 해임을 막았다. 척 그래슬리 법사위원장(공화)은 “법사위의 2017년 일정은 결정됐으며 (신임) 법무장관 (청문회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어 신임 법무장관 지명이 무위에 끝날 것임을 경고했다. 의회의 ‘실력행사’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도 공화당 존 매케인을 포함한 공화당 이탈 표로 무산되는 등 트럼프는 당파를 뛰어넘은 의회의 협공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퀴니피액대가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6월 말 40%보다 하락한 33%로 나타났다. 공화당 지지자들 중 트럼프 지지율도 6월 말 84%에서 76%로 떨어졌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대놓고 반트럼프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상원의원 재선을 노리는 제프 플레이크(공화·애리조나)는 최근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란 책을 내고 “우리는 약 먹은 코끼리(공화당 상징)처럼 자유무역 경제원칙을 버리고 앞뒤가 안 맞는 포퓰리스트 슬로건을 향해 휘청거리며 걸어갔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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