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 에세이]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월드컵 가는 길, 쉬운 적 있었더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4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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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할 당시 대표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할 당시 대표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순탄치만은 않았던 월드컵 본선행 역사

‘현해탄 배수진’ 비장했던 첫 진출부터
한·일 희비 엇갈린 ‘도하의 기적’까지
‘도쿄대첩’ 이민성 결승골 아직도 짜릿

1958년 신청기한 초과로 탈락 해프닝
북한 피하고 호주에 치이며 암흑기도
1986년부터 8회 연속 본선행 ‘금자탑’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월드컵축구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2002한일월드컵이 대표적이겠지만, 이 대회 말고도 우리를 웃고 울린 대회는 수두룩하다. 4년마다 열리는 단일종목 최대 이벤트 월드컵은 본선 진출만으로도 큰 영광이다. 하지만 실은 본선을 가기 위한 예선전이 더 긴장되고 짜릿하다. ‘티켓 전쟁’이라는 말이 풍기듯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쟁탈전이다.

한국은 2014년 대회까지 8회 연속 포함해 총 9차례 본선티켓을 거머쥐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9회 연속 및 10회째 출전을 노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름을 짜듯 진통이 심하다. 한국은 아시아 최종 예선 A조 2위다. 남은 경기는 단 2경기. 1위 이란은 이미 본선행을 확정했다. 조 3위 우즈베키스탄과 승점 차는 겨우 1점이다. 조 2위까지가 본선에 직행하는데, 조 3위의 경우 다른 조 3위와 플레이오프(PO)를 치러 이긴 팀이 북중미 예선 팀과 다시 PO를 치른다. PO를 갈 경우는 첩첩산중이다.

이런 살얼음판 상황이 되다보니 대표팀 감독이 경질되고, 새 감독이 선임됐다. 이 또한 통증이 만만치 않았다. 벌집 쑤신 듯 한바탕 소란이 일더니 지금은 잠잠해졌다. 태풍전야의 고요함처럼.

팬들은 불안하다. 본선 진출이 좌절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다. 차라리 이번엔 떨어져서 정신 차려야한다는 극단적인 의견도 있지만 그건 결코 이성적인 판단이 못된다. 대한축구협회가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팬들의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큰 지 확인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질타가 쏟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선티켓을 향한 전진을 멈춰서는 안 된다.

우여곡절. 한국축구가 본선티켓을 공짜로 얻은 적은 월드컵을 개최한 2002년 딱 한번이다. 그 이외에는 숱한 장애물을 넘었다. 1954년 월드컵부터 60여년간 이어진 최종예선의 추억을 따라가 본다. 여기에는 한국축구의 영광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글은 ‘한국축구 100년사’를 참조했고, 대한축구협회의 협조를 얻어 작성됐다.

브라질 월드컵 출정식 당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브라질 월드컵 출정식 당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기적과 현해탄, 그리고 대통령

나에게 알라딘의 램프가 있다면 이런 소원을 빌겠다. “다시 한번 도하의 기적 같은 드라마를 보고 싶다.”

한국축구의 월드컵 스토리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대회가 1994미국월드컵 최종예선이다. 보고 또 봐도 짜릿하다.

최종예선은 한국을 비롯해 북한 일본 사우디 이란 이라크 등 6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1993년 10월 15일부터 28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풀리그로 진행됐다. 본선티켓은 단 2장. 김호 감독이 이끈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란을 3-0으로 꺾었고, 이라크와 2-2, 사우디와 1-1로 비긴데 이어 일본에 0-1로 졌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일본이 2승1무1패 승점 5(골득실 +3), 사우디 1승3무 승점 5(골득실 +1), 한국 1승2무1패 승점 4(골득실 +2)로 일본이 가장 유리한 입장이었다.

한국은 북한을 무조건 이기되, 최소한 2골차 이상 이기고, 일본과 사우디 중 한 나라가 비기거나 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이기면 한국은 무조건 탈락이었다. 사우디는 이란을 4-3으로 꺾었다. 한국은 고정운, 황선홍, 하석주의 연속골로 북한을 3-0으로 이겼다.

그 사이 일본은 이라크를 상대로 2-1로 앞선 가운데 추가시간이 적용됐다. 한국선수들은 대승을 거두고도 풀이 죽은 채 경기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이라크의 자파르가 마지막 순간 헤딩골을 성공시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이다. 이름 하여 ‘도하의 기적’.

도하의 기적을 일으킨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도하의 기적을 일으킨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불과 10여초 사이에 월드컵 티켓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다음날 신문에 실린 한국과 일본 팬들의 희비가 엇갈린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예선에 출전한 건 1954년 스위스월드컵이다.

이 때의 분위기는 비장함의 극치였다. 아시아 예선에는 한국과 일본 단 2개국만 참가했다. 당초 중공도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기권했다. 당시는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아 일본팀의 방한이 허락되지 않던 때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홈앤드어웨이를 원칙으로 했지만 결국 3월 7일, 14일 일본에서 두 차례 경기를 치렀다. 이는 8.15 해방 이후 최초로 벌어진 한일전이었다. 일본 출국을 허가받은 자리에서 이유형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만약 일본에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한국은 1차전에서 눈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5-1 대승을 거뒀고, 2차전은 2-2로 비겨 처음으로 본선 티켓을 따냈다.

스위스 월드컵 예선전 당시 한일전 모습.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스위스 월드컵 예선전 당시 한일전 모습.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1998년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차범근 감독의 한국은 초반부터 승승장구하면서 총 8경기 중 6경기 만에 본선행을 확정했다. 특히 도쿄 원정에서 이민성의 결승골로 거둔 2-1 역전승은 한국 축구사의 백미로 꼽힌다.

일요일 오후 열린 이날 경기의 시청률은 57%로, 당시로서는 단일 방송사 스포츠중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성팬들은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국가대표팀 공식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탄생한 월드컵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축구팬이라면 반드시 기억하는 그 순간. 한국이 1998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인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원정에서 이민성의 결승골로 2-1의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민성의 인생 골은 한국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대한민국 축구팬이라면 반드시 기억하는 그 순간. 한국이 1998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인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원정에서 이민성의 결승골로 2-1의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민성의 인생 골은 한국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멀고도 험한 예선 레이스

1958년 스웨덴월드컵 예선에선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대륙별 예선을 위해 FIFA가 각국 축구협회에 참가 신청서가 포함된 공문을 보냈는데, 영어를 못하는 축구협회 직원이 사무실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다가 제출기한을 넘기고 말았다. 이 바람에 한국은 탈락했다.

1962년 칠레월드컵 예선은 아시아 1위 팀이 유럽 국가와 PO를 치렀다. 상대는 유고슬라비아. 아시아 예선을 통과한 한국은 1961년 10월 2일 김포공항을 떠나 도쿄∼타이페이∼홍콩∼테헤란∼앙카라∼이스탄불∼로마를 거쳐 37시간만에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10월 8일 열린 경기에서 1-5로 패했고, 11월 26일 홈 2차전에서도 1-3으로 졌다.

유고 원정은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사회주의 국가 방문 경기였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예선전은 북한 때문에 포기한 케이스다.

예선경기를 앞둔 축구협회는 바짝 긴장했다. 해방 이후 단 한번도 부딪혀 본 적이 없는 북한축구와 정면으로 대결해야하는 상황 때문에 민감했다. 결국 북한과 비교가 될 수 있다는 관계당국의 판단에 따라 이미 참가신청까지 했던 축구협회는 벌금 5000달러를 물고 출전을 포기했다. 정치논리가 앞서던 시절 얘기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북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북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호주에 막혀 연거푸 무너지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예선 최종전은 한국과 일본, 호주가 참가한 가운데 1969년 서울에서 열렸다. 일본을 제치고 한국과 호주가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었다. 한국은 1-1 동점서 후반에 페널티킥 기회를 얻었으나, 실축하는 바람에 종합전적에서 호주에 밀려 탈락했다. 페널티킥을 실축한 임국찬은 국민적 비난을 받다가 얼마 후 미국으로 이민 갔다.

1974년 서독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한국과 호주는 1장의 티켓을 놓고 최후의 대결을 펼쳤다. 홈과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두 팀은 제3국인 홍콩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는데, 계속되는 경기로 체력이 떨어진 한국이 0-1로 졌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최종예선은 한국, 이란, 호주, 쿠웨이트, 홍콩이 홈앤드어웨이로 치렀다. 한국은 초반에 순조롭게 나가다 호주 원정에서 1-2로 패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정민 감독이 사퇴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이란에 1위를 내주고 본선 티켓을 놓쳤다.

호주와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 모습.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호주와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 모습.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꿈은 이루어진다

한국은 아시아를 동과 서로 나눠 진행된 1986년 멕시코월드컵 예선에서 꿈을 이뤘다. 1985년 3월 2일 네팔 원정에서 2-0으로 이겼으나 말레이시아 원정에서 0-1로 지며 위기를 맞았다. 축구협회는 문정식 감독을 해임하고, 김정남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네팔(4-0 승)과 말레이시아(2-0 승)를 홈에서 물리치면서 2차 예선에 올랐다. 인도네시아를 거푸 따돌리고 최종예선에서 일본을 만났다. 10월 26일 도쿄 원정에서 정용환, 이태호의 연속골로 2-1로 이겼고, 2차전 홈에서 허정무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고 무려 32년만에 본선행을 확정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에서도 한국은 1차 예선과 최종 예선을 합쳐 9승2무에 30골 1실점, 압도적인 기록으로 본선에 나갔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을 통틀어 처음으로 2회 연속 월드컵에 나가는 국가가 됐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 허정무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선수 시절 허정무 .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비교적 순탄한 2002년 월드컵 이후

2006년 독일월드컵 예선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본프레레. 사우디와 경기에서 홈, 원정 모두 패했지만 우즈벡, 쿠웨이트를 격파하며 6회 연속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그러나 최종예선이 끝나고 두 달 뒤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에 패하는 졸전 끝에 결국 감독직을 내려놓고 말았다. 본선 진출 확정 후에 사령탑이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였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은 큰 어려움 없이 본선행을 확정했다. 사우디 원정에서 승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마지막 경기는 서울에서 열린 이란전. 이란은 한국을 이겨야 본선에 나갈 수 있었고, 비기거나 지면 북한이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박지성의 후반 막판 동점골로 이란은 탈락하고 북한이 진출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예선에서는 이란에 수모를 당했다. 원정에서 0-1로 패하더니 울산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도 패하고 말았다. 4승2무2패 조 2위로 간신히 본선에 올랐다. 경기 후 이란 감독 케이로스가 최강희 감독에게 주먹 감자를 날리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축구는 도전과 응전이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아시아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엔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본선무대를 밟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위기에서는 지혜롭게 극복해왔고, 기회에서도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2018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은 8월 31일 이란과 9차전 홈경기, 9월5일 우즈벡과 10차전 원정경기를 갖는다. 안심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본선에 연속 진출한 선배들이 그래왔듯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한국축구의 저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축구 화이팅!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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