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서 트와이스 모르면 간첩”… 5년 잠깬 한류 성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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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는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마마무, 블랙핑크, 레드벨벳의 인기도 점차 올라왔고요. 도쿄 시부야 타워레코드가 다시 한류의 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2일 만난 일본 회사원 이진석 씨(35)는 “일본 TV에 나오지 않아도 한국 걸그룹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팬이 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오타쿠 진화론’이란 책을 냈고 도쿄에 3년 넘게 거주 중인 그는 요즘 일본 내 한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했다.

한류 붐 재점화의 견인차는 6월 말 일본에 정식 데뷔한 걸그룹 트와이스다. 7월 1일부터 31일까지 도쿄 대표 쇼핑몰 ‘시부야 109’는 트와이스를 여름 세일 대표 모델로 내세웠다. 여기엔 2020년 도쿄 올림픽 홍보를 맡은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가 참여했다. ‘시부야 109’는 일본에서 옥외광고비가 가장 비싼 지점이다. 앨범 발표와 함께 오리콘 차트 정상을 밟은 트와이스는 8월 첫째 주까지 5주 이상 오리콘 주간 차트 10위권을 지키고 있다.

트와이스가 시부야를 점한 가운데 지난달 중순 걸그룹 블랙핑크(YG엔터테인먼트)는 도쿄 하라주쿠와 시부야 사이를 오가는 버스 래핑 광고를 시작했다. 블랙핑크 멤버 네 명의 얼굴이 도쿄 번화가를 달린다. 지난달 20일 연 첫 쇼케이스는 참가 응모자가 20만 명에 이르렀다. 1만4000석짜리 공연장 ‘부도칸’은 현지 블랙핑크 팬으로 가득 찼다. 이 자리에는 양현석 프로듀서도 참석했다. 블랙핑크는 이달 30일 한국 발표 곡을 모아 양국 언어 버전으로 풀어낸 일본 데뷔 앨범을 낸다.

1990년대 보아, 2000년대 동방신기, 2010년대 초 소녀시대, 카라가 일본을 달군 이후 5년 만에 열도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붐은 가요기획사보다 현지 팬들이 먼저 이끌었다.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일본 지상파 TV는 한국 연예인 출연을 보이콧했다. 한류는 소수의 마니아 장르로 위축된 듯했다. 구원자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였다. 일본인 멤버가 셋이나 속한 그룹(트와이스)이 한국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흥미로운 뉴스가 입소문을 타고 뮤직비디오와 함께 일본 내 중고교생 사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일본 걸그룹이 주춤한 것도 요인 중 하나다. 현지 시장에서 장기 집권해 온 AKB48(2005년 데뷔)가 10년 역사를 거치며 점차 대중에서 소수의 오타쿠 위주로 팬 층이 집중화된 것도 한몫했다. 이진석 씨는 “AKB48가 1인당 수십, 수백 장의 CD를 사는 오타쿠들의 전유물로 변했다”며 “반면 한국 그룹들은 현지 음반사, 홍보사와 손잡고 강력한 대중 마케팅을 펼친 전략이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지난달 말에는 트와이스가 후지TV가 선정한 ‘일본 여중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트렌드 톱10’ 1위를 차지했다. 트와이스가 파고들고, 트와이스와 비슷한 다른 한국 걸그룹을 계속 찾아 확장해 가는 현지 젊은 팬들의 열정이 불길을 지속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김상호 JYP엔터테인먼트 이사는 “2014∼2016년 데뷔한 한국 걸그룹들이 1, 2년간 한국에서 인기 기반을 확실히 다지며 자연스레 해외 팬덤을 일군 것이 올해 일본에서 걸그룹 붐을 이끈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트와이스#블랙핑크#마마무#레드벨벳#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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