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상… SNS 중독 2030세대, ‘멍 때리듯’ 보는 영상에 빠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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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나뭇가지를 손으로 비벼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피우는 영상. 유튜브 화면 캡처
마른 나뭇가지를 손으로 비벼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피우는 영상. 유튜브 화면 캡처
맨발의 남자가 숲속에서 맨손으로 집을 짓는다. 벽에 바를 진흙을 만들기 위해 열 걸음 떨어진 시냇물에서 몇 차례 물도 길어 온다. 마른 나뭇가지 두 개를 수십 분간 비벼 연기를 내 불을 피운다. 돌도끼로 나무 둥치를 ‘탕 탕 탕…’ 치니 오두막 기둥이 될 나무토막이 생겼다.

구독자 490만 명의 유튜브 채널 ‘프리머티브 테크놀로지(원시 기술)’는 호주의 자연 속에서 원시적인 방법으로 도구와 집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화면 편집을 최소화해 4시간 이상 반복되는 작업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개인방송 운영자의 화려한 입담이나 음악은 없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오두막을 짓는 이 동영상 중 하나는 조회수가 2100만 회를 넘어섰다.

별생각 없이 ‘멍 때리듯’ 보는 영상들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폭발적 인기다. 스마트폰 청색광 중독 시대에, 명상마저 무위(無爲) 아닌 시청으로 행해지는 셈이다. ‘멍상’(멍하게 보는 영상)이라 부를 만한 새 경향이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박종민 교수는 “하루 평균 5∼6시간 SNS에 노출된 현대인들이 쉬는 시간조차도 SNS를 봐야 안정감을 느끼는 미디어 중독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퇴근 후 자투리 시간에 멍상을 즐겨보는 회사원 이나현 씨(24)는 “복잡한 온라인 세상에서 이 영상은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청정구역”이라며 “복잡하고 빠른 페이스로 돌아가는 삶을 사는 내겐 오아시스 같다”고 말했다. 이동환 씨(27)는 “가장 방해받고 싶지 않은 일요일 오전에 단순한 영상을 찾는다”며 “움직이기 싫고 심심할 때 보기 좋다”고 밝혔다.

뜨겁게 달군 니켈 공이 전자 기기를 태우는 실험 영상, 끝없는 우주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상의 한 장면(왼쪽부터). 유튜브 화면 캡처
뜨겁게 달군 니켈 공이 전자 기기를 태우는 실험 영상, 끝없는 우주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상의 한 장면(왼쪽부터). 유튜브 화면 캡처
이런 영상들은 의미 없는 동작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뜨거운 니켈 공으로 태블릿 PC부터 아이폰까지 다양한 사물을 태우는 RHNB(Red Hot Nickel Ball) 영상, 광활한 우주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과일과 채소를 칼로 자르는 영상 등이 ‘꿀잠 영상’, ‘마음이 편해지는 영상’이라는 키워드로 소비되는 중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 빗소리,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등 ASMR(약하게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소리) 콘텐츠도 청각의 영역인 팟캐스트를 넘어 ‘멍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로 사회에 사는 현대인들이 또 다른 몰입할 거리를 찾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사람들이 오락 영화를 보기 원하는 것과 같다”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반면 심리 치료의 효과는 검증된 바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은정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정한 자극이 마음의 안정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명상과 동일한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심리 치료의 한 종류인 명상을 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마음의 안정을 주는 단순한 자극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치료를 원한다면 보다 적극적인 실제 명상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sns 중독#2030 세대#멍상#멍 때리기#as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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