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폭주 막을 카드”… 물 위로 떠오른 핵추진 잠수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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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ICBM 2차 도발 이후]‘한국의 게임체인저’로 부상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의 모델로 꼽히는 프랑스 루비급 핵잠.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의 모델로 꼽히는 프랑스 루비급 핵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효용성과 현실화 가능성이 주목된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폭주가 ‘임계치’에 다가서는 만큼 한국군의 대북 억지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비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지만, 핵 원료 구매 등을 위한 미국과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관건이다.

○ 핵잠, ‘한국판 게임체인저’ 될까

김정은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SLBM을 실전배치하면 북핵 사태는 사실상 ‘루비콘강’을 건너게 된다.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핵타격할 수 있는 두 무기는 북핵 사태의 판도를 바꾸는 명실공히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되기 때문이다.

은밀하고 기습적인 핵공격 위협을 기존의 재래식 전력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나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로도 요격하기 쉽지 않고, 단 한 발의 핵미사일만 서울에 떨어져도 수만, 수십만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다 공세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지할 ‘한국판 게임체인저’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군 안팎에선 핵잠이 ‘유력한 카드’로 제시된다. 핵잠은 은밀성과 공격 및 수중작전 능력에서 재래식(디젤추진)잠수함을 압도한다. 핵잠은 핵분열 때 발생하는 열로 만든 증기로 터빈을 돌려 동력을 얻는다. 선체 내 소형원자로의 핵연료(농축우라늄)가 다 탈 때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30년 동안 연료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무제한 잠항작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반면 재래식잠수함은 수시로 물 밖으로 나와 디젤터빈을 돌려 축전지를 충전하고, 연료도 주기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적국의 함정이나 항공기에 들킬 가능성이 많다. 최신형 재래식잠수함도 2주 이상 수중작전을 지속하기 힘들다.

핵잠의 최대 속도는 시속 45km로 재래식잠수함보다 3배 이상 빠르다. 적국 해역의 표적을 타격한 뒤 신속히 빠져나온 후 최단 시간에 재공격에 나설 수 있다. 재래식잠수함보다 덩치가 커 더 많은 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는 것도 핵잠의 장점이다. 한국군이 핵잠을 실전배치하면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와 김정은 지휘부에 대한 상시적 감시·타격태세를 갖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다량의 탄도미사일을 실은 핵잠은 김정은에게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는 순간 제거될 것이라는 현실적 공포를 안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 노무현 정부의 ‘362사업’ 부활하나

군 당국은 노무현 정부 때 핵잠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일명 ‘362사업’으로 불린다. 해군이 노 대통령에게 핵잠 건조를 보고해 승인받은 ‘2003년 6월 2일’의 의미가 담겼다. 당시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2차 핵 위기가 고조되던 때였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자주국방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는 중장기적 북핵 대응 차원에서 핵잠 건조를 추진했다. 송 장관은 당시 해군의 주요 실무자로 참여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이 알려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10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우라늄 농축 비밀실험에 대한 사찰을 통보하면서 무산됐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한국의 핵개발을 우려해 핵잠 건조를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전인 4월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서 “우리나라도 핵추진잠수함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당선되면 미국과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를 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한국형 핵잠(SSN)은 재래식미사일을 실은 3000∼4000t급의 ‘비핵전략무기’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루비급이나 바라쿠다급 핵잠이 모델이다. 이 규모의 핵잠은 국제적으로 상용거래가 허용되는 저농축우라늄(농축도 20%)을 연료로 사용한다. 한국이 핵잠용 원료를 자체 농축해 조달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결국 연료를 미국에서 구매하려면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현 협정에선 핵물질의 일체의 군사적 용도를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 늦어도 7∼8년 안으로 개발 가능


한국은 핵잠용 소형원자로 기술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선체 제작은 잠수함 원조국인 독일에 뒤지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고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면 늦어도 7, 8년 안에 한국형 핵잠 개발이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362사업에 참여했던 문근식 해군 예비역 대령은 “범정부 차원의 핵잠사업단을 꾸려 관련 기술과 예산을 집중 투자하면 개발·배치 시기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추진 중인 장보고-III(3000t) 잠수함 4번함부터 핵잠으로 건조해 2020년대 중반 이후 최소 3척, 최대 6척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20년대 후반까지 총 9척이 건조되는 장보고-III의 1∼3번함은 디젤잠수함으로 건조가 진행 중이고, 4∼6번함도 디젤 추진으로 계획돼 있다. 7∼9번함의 추진 형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이 핵잠 개발을 추진하면 세계적 수준의 잠수함 전력과 우라늄 농축기술을 갖춘 일본도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일본에 앞서 한국의 핵잠 개발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핵 참화를 겪은 일본의 핵잠 도입은 한국보다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일동맹의 일체화를 우려하는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반발도 더 심할 개연성이 있다. 정부 당국자는 “미 본토까지 위협하는 김정은의 핵 야욕을 저지하려면 핵잠 도입 등 한국군 전력의 ‘환골탈태’가 절실하다는 점을 미국에 적극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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