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지” 들리면 출동… 119 무전 감청해 시신 3000구 선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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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월간 ‘시신 장사’로 45억 챙겨… 사설 구급차-장례업자 일당 구속

“할머니께서 갑자기 눈을 뜨지 못하세요. 빨리 좀 와주세요!”

4월 20일 오전 7시경 부산시소방본부 119상황실에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 왔다. 해운대구 반송동에 사는 A 씨(75·여)가 의식을 잃었다는 가족의 절규였다. 소방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A 씨는 숨을 거둔 상태였다. 소방대원들은 변사자 발생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경찰관이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도 A 씨 집 앞에는 사설 구급차 한 대가 이미 서있었다. 경찰은 검안의를 불러 사인을 확인한 뒤 가족에게 주검을 옮기도록 병원에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충격에 빠진 가족들은 통곡만 하며 어찌 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때, 사설 구급차에서 나온 손모 씨(41)가 가족에게 다가왔다. “제가 고인을 가까운 병원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사설 구급차 운영자라고 자신을 밝힌 손 씨는 15만 원을 요구했다. 가족들은 빨리 고인을 옮기고 싶은 마음에 수락했다. 손 씨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뒤 A 씨 주검을 근처 장례식장으로 옮겨 대기하던 장례업자에게 넘겼다.

손 씨와 장례업자, 그리고 소방본부의 무전 내용을 중간에서 감청하고 손 씨에게 연락한 총책 임모 씨(46) 등은 모두 한패였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일 통신비밀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임 씨와 감청 담당 2명, 구급차 운용책 1명, 장례지도사 8명 등 12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5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소방본부의 비상연락 상황을 감청한 뒤 구급차를 사고 현장으로 보내 시신을 정해진 장례업자에게 넘기는 ‘시신 장사’를 했다.

이들이 다른 병원이나 사설 구급차 운영자보다 빨리 시신을 ‘선점하는’ 수법은 체계적이었다. 먼저 해운대구의 원룸에 ‘감청 상황실’을 만들었다. 무전기를 구입해 소방대원들이 쓰는 주파수에 맞추고 전파를 감지하는 안테나를 세웠다. 무전기를 드러내놓고 사용하다 혹시 주위의 의심을 살까 대비책도 마련했다. 무전기를 휴대전화에 연결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 휴대전화에는 119 통신 내용이 무전기에 잡히면 자동으로 감청 담당자 휴대전화에 전화를 거는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었다. 이 ‘덕분에’ 오전과 오후 12시간씩 교대 근무하던 감청 담당 2인은 원룸 밖에서도 119 무전을 24시간 감청할 수 있었다.

감청 담당은 ‘심정지’ ‘심폐소생술(CPR)’ ‘추락사’ ‘사고사’같이 사람이 죽거나 죽을 확률이 높은 사고와 관련된 표현이 들리면 바로 임 씨에게 연락했다. 임 씨는 구급차 운용책에게 연락해 현장에 출동하도록 했다.

부산 전역을 4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에 담당 장례지도사들을 뒀다. 이들은 구급차 운용책이 가져오는 시신을 인수해 장례식장이나 병원에서 빈소를 차리게 하고 장례비용을 받아 나눠 가졌다. 총책 임 씨는 이들에게서 매달 최소 5000만 원을 상납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경찰은 이들이 22개월간 시신 3000여 구를 선점해 45억 원의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소방본부는 예산 문제로 여전히 아날로그 주파수분할다중접속(FDMA) 방식으로 무전통신을 하기 때문에 감청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경찰 무전통신은 디지털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이어서 외부 감청이 불가능하다. 소방본부도 2020년까지 디지털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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