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전형료 인하계획 제출’ D-3…대학가 막판 속 앓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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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요구한 ‘대입전형료 인하계획 제출’ 시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학들이 저마다 인하율을 놓고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대학들은 이번 전형료 인하 요구가 새 정부 들어 추진되는 첫 ‘압박’ 정책이란 점에서 정부의 기대에 상응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모양새다.

대학들은 정부의 이번 요구에 성실히 협조하지 않았다가는 △올 하반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입학금 인하 요구 △내년 상반기에 진행될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정원 감축)’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 등을 고민하며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교육부는 이미 “올해 전형료 인하 실적을 내년 대학 재정지원사업 평가지표에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주요 대학이 10%대 이상의 ‘두 자릿수’ 전형료 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 대학 “적자나도 협조해야”

1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대학들은 교육부가 4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대입전형료 투명성 제고 추진계획’을 확정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 회의를 열고 막판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통령이 직접 대입전형료 인하 필요성을 거론한 이후인 지난달 19일 대학 입학처에 공문을 보내 이달 4일까지 인하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서울 시내 A 대 관계자는 “수시 모집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아무런 절차와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인하계획을 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며 “인하 실적을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겠다는 말이 사실상 ‘협박’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B 대 관계자는 “현재 수험생들이 내는 대입전형료를 모두 쓰고도 입학설명회 등에 쓸 비용이 부족해 교비를 1억 원 이상 가져다 쓰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형료를 내리지 않았다가는 무슨 칼날을 들이댈지 몰라 감당할 수 있는 적자 범위에서 전형료를 낮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대학은 10%대 이상의 두 자릿수 인하를 추진하고 있었다. C 대 관계자는 “총장 결재도 받아야 하고 다른 학교 동향도 파악해야하는 등 막판 변수가 있다”면서도 “확실한 건 두 자릿수 인하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D대 관계자도 “한 자릿수 인하를 할 ‘간 큰’ 대학은 없을 것”이라며 “적게 내리면 적게 내렸다고 눈에 띌 것이고, 많이 내리면 그동안 왜 그렇게 많이 받았냐고 할 테니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된다”고 전했다.

E 대 관계자는 “지금도 정부가 대입전형료 사용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돼 있고, 수험생들이 중도 탈락해 전형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면 남은 비용을 돌려주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마치 정부는 국민들이 교육기관인 대학을 돈을 남기는 장사꾼처럼 생각하도록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가 이번 인하계획 제출을 요구하면서 함께 첨부한 ‘제출서식 예시파일’에 대해서도 갑갑함을 토로했다. 교육부는 ‘예시’라며 보낸 이 엑셀파일에서 25.1% 인하를 예로 들었다. 이 관계자는 “공문에 그 파일이 첨부된걸 보고 다들 경악했다”며 “정말 단순한 예시일 수도 있지만 을의 입장인 대학으로서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최근 수능 정시나 학생부 교과전형에 비해 학생 선발에 시간과 인력투입이 훨씬 많은 학생부종합전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형료 인하 요구가 일방적으로 추진되는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솔직히 정부가 하라고 해서 대학들이 학종 선발 비중을 늘리고 있는 건데 학종은 학종대로 키우고 전형료는 낮추라는 것은 결국 학생들을 대충 뽑으라는 얘기”라며 “정말 제대로 학종에서 학생 서류를 보고 면접을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전형료는 예고편, 본게임은 입학금과 2주기 평가?

이 같은 불만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대입전형료 인하를 추진하는 것은 새 정부의 첫 정책요구에 불응했다가 추후 계속될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당장 대입 시즌이 지나면 연말 쯤 새 정부가 대학들에게 입학금 인하를 요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부분 대학이 2012년 이후 등록금을 1%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학금은 사실상 대학들이 자의적으로 올리고 또 사용할 수 있는 재원 창구였다. 입학금은 등록금과 달리 법적으로 산정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사용내역 또한 밝힐 필요가 없어 그간 많은 대학들이 등록금 동결로 인한 손해분을 입학금으로 충당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제 이 때문에 올해 국내 대학의 입학금은 0원인 곳부터 100만 원이 넘는 곳까지 그 액수가 천차만별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대학 입학금 총 규모는 4093억 원이다. 올해 국공립대 평균 입학금은 14만3000원, 사립대 평균 입학금은 67만8000원이었다.

실제 교육부는 지난달 입학금 인하 논의를 위해 20개 대학 기획처장을 소집했다. 교육부 차원에서 입학금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입학금 원가 산정 연구용역도 진행 중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입학금의 투명성 제고를 통한 거품 걷어내기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전형료도 내리고, 입학금도 내리고, 등록금은 7년째 동결이면 대학은 어디서 재원을 얻어 교육하란 말이냐”고 토로했다.

입학금 인하 압박과 더불어 대학들은 내년 3월 정부가 진행할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두 사안은 대입전형료 인하와 비교 불가능할 만큼 대학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학령인구 급감 추세에 맞춰 대학 평가를 통해 각 대학의 정원을 줄이는 사업이다. 인구절벽으로 인해 당장 내년부터 고교졸업자보다 대학정원이 많아지기 때문에 2023년까지 3단계(3주기)에 걸쳐 16만 명의 대입정원을 감축하게 된다. 대학입장에서는 미래 대학의 규모와 그에 따른 성패가 결정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정부가 학교 돈을 개인 쌈짓돈처럼 쓰는 부실사학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데 이런 곳은 손도 못 대고 애꿎은 대학 전체를 옥죄고 있다”며 “정부가 대학에 칼날을 겨눌수록 대학은 더 정부의 돈에 목 맬 수밖에 없겠지만, 과연 이런 식의 변화가 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 경쟁력을 강화할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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