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휴가를 못가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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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으로의 피서를 어찌 마음 두지 않으랴만 세상사에 파묻혀서 벼슬 버리기가 어려워라
山中避暑豈無心紅塵汨沒難抽簪
(산중피서기무심 홍진골몰난추잠)

―이색, ‘목은집(牧隱集)’
 

어떤 승려가 불교의 성지인 중국 오대산(五臺山)을 유람하며 많은 시도 지어 책으로 엮었다. 이 시집에 고려 후기의 문인인 이색이 한 편의 시를 적어주었는데, 위의 내용은 그 시의 한 대목이다. 오대산은 한여름에도 음지쪽에는 눈이 남아 있을 정도로 서늘하여 청량산(淸涼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지금도 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한여름은 덥다. 예전의 여름도 더웠을 테지만 언제나 지금의 여름이 가장 더운 것만 같다. 더운 여름에는 일이며 공부며 모든 것이 버겁기만 하여, 학교는 방학을 하고 회사는 휴가를 주어 심신을 쉴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은 방학이 더 바쁜 때가 되었다. 배움(學)을 잠시 내려놓으라는(放) ‘방학(放學)’에 학생들은 학원(學)으로 내몰리고(放) 있다. 그리고 팍팍한 살림에 여름휴가는커녕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만 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600여 년 전의 이색도 관직에 매여 있었기에 훌훌 털어버리고서 한가하게 유람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던 듯하다.

그러나 바빠서 휴가를 가지 못하는 사람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또 많은 사람이 있다. 일이 있어야 바쁘기도 할 텐데 그런 기회마저 적어진 요즘의 현실 앞에서는 일이 많은 것을 탓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불만일 수 있다. 그런데 일이 없다고 한가한 것은 또 절대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한 시험 준비 등으로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욱더 바쁘고 초조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더운 여름날 누군들 시원한 산중이 그립지 않겠는가마는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더운 여름은 시간이 가면 반드시 지나간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지금의 지친 삶들도 여름만큼의 시간만 지나면 몸도 마음도 행복해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중 여유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색(李穡·1328∼1396)의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목은(牧隱)이다. 젊은 시절 원나라 국자감(國子監)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귀국해서는 정당문학, 지공거 등을 역임하였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이색#목은집#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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