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을 때 내려온 고이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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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전념” 도민퍼스트회 대표직 내려놓고 특별고문으로

“저는 이제 도지사로서 도정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도쿄도의원 선거 압승을 이끈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사진) 도쿄도지사가 3일 기자회견에서 도민퍼스트회 대표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임 발표를 접한 기자들이 웅성거리자 “의회의 견제 기능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도민퍼스트회가 도쿄도의회의 제1당이 된 상황에서 자신이 도지사와 도민퍼스트회 대표를 다 맡는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고이케는 이번 선거를 통해 도의회 의석 3분의 2에 육박하는 폭넓은 지지 세력을 확보했다.

올 초 도민퍼스트회를 만들고 특별고문으로 측면 지원을 하던 고이케는 선거가 본격화되자 지난달 1일 자민당에 탈당계를 내고 도민퍼스트회 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선거를 총지휘하며 101번의 거리유세를 통해 집권 자민당을 꺾고 제1당 자리를 차지하는 압승을 이끌었다. 이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대승을 거둔 뒤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는 모습으로 ‘고이케 극장(劇場)’의 한 막을 내렸다.

고이케는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특별고문으로 한 발짝 물러났다. 후임 대표는 노다 가즈사(野田數) 전 대표가 맡았다. 하지만 노다는 고이케의 특별비서를 지낸 바 있어 일각에선 ‘형식적으로만 물러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고이케 뜻대로 도의회가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도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고이케의 ‘신속하고 깔끔한 처신’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고이케의 도민퍼스트회 대표직 사임이 집권 자민당과의 갈등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으려는 노림수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앙정부와 필요한 협력은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2020년 도쿄 올림픽, 도쿄 최대 수산물시장인 쓰키지(築地)시장 이전 등의 과제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고이케가 도지사로서 성과를 내려면 중앙정부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또 중장기적으로 총리 자리를 노린다면 내년 중의원 선거에서 발판이 될 자신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자민당 일부 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고이케가 1990년대 초 일본 정계를 흔들었던 일본신당을 모델로 삼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등장한 일본신당은 참의원, 도쿄도의원, 중의원 선거에서 약진하며 연립정권을 세워 자민당 일당지배를 끝내고 정권교체를 이뤘다. 고이케 자신도 일본신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올 초 ‘와신상담’을 이유로 금주를 선언하고 이번 선거에 다걸기(올인)했던 고이케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선거가 끝나고 집에 가서 맥주를 마셨다. 아주 맛있었다”고 승자의 여유를 드러냈다. 고이케가 2009년 자신이 속했던 자민당이 야당이 되자 “정권 탈환 때까지 머리를 깎지 않겠다”며 1년 9개월 동안 머리를 길렀던 일화는 지금도 정치권에 회자되는 얘기다. 고이케는 이때의 헤어스타일을 ‘와신상담 헤어’라고 명명한 적도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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