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무상교육’에 한숨 커진 특성화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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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채용 줄고 학령인구 급감… 올해 서울 74개교 중 10곳 미달
학비 부담 없는 장점마저 사라질판… 내년 신입생 더 줄어들까 우려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도입하고 대학에는 실질 반값등록금을 실현한다는 정부 방침이 나오자 특성화고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017학년도에도 서울 울산 강원 등 전국에서 특성화고 신입생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학령인구가 급감해 일반고 정원도 모자라는 데다 고졸 취업이 예전 같지 않아 다시 특성화고 기피 현상이 생겨서다.

특성화고는 다가올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더 걱정한다. 4일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 고1 신입생은 46만2900명으로 올해(52만1800명)보다 약 6만 명 줄어든다. 그런데 단계적으로 고교 무상교육이 시작되면 학비 부담이 없는 특성화고의 강점이 사라진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 고명경영고는 2017학년도 신입생 208명 정원 중 150명도 채우지 못했다. 처음으로 학기가 시작한 3월까지 추가모집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서울금융고는 260명 정원에 61명이 모자라 3월 추가모집을 했지만 다 못 채웠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74개 특성화고 중 10곳이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지방은 더 심각하다. 경북 경주마케팅고는 신입생이 한 명도 없어 2년 뒤 폐교된다. 강원도교육청의 경우 32개 특성화고 중 22개교가 미달됐고, 경쟁률은 0.94 대 1이었다. 경남도교육청은 경쟁률이 0.93 대 1에 그쳐 최근 4년 사이 최하였다. 문제는 내년에 고1 학생이 더 줄어드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특성화고를 강조하면서 고졸 취업을 활성화했다. 공공기관이 고졸을 얼마나 채용했는지 검사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공공기관의 60.6%에서 고졸 채용을 한 명도 하지 않았다.

서울 A특성화고 교사는 “예전엔 기업들이 특성화고 출신을 어느 정도 채용했는데 현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열악한 회사로 간다”며 “나도 (그런 곳에는) 안 보내고 싶은데 어떤 학부모가 특성화고에 자식을 보내겠느냐”고 지적했다.

특성화고는 새 정부의 공약이 특성화고 경쟁률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 B특성화고 교장은 “집안 환경이 어려워 학비 부담 없는 특성화고에 오는 학생이 많은데 대통령이 고교 무상교육에 대학 등록금도 낮추겠다고 하니 애들이 다 일반고로 몰릴 것”이라고 했다. 서울 C특성화고 교사도 “일반고 가서 대학 진학하겠다는 욕구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역시 특성화고의 신입생 감소를 우려한다. 이에 특성화고 비중을 유지시키는 시도 교육청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30%대였던 특성화고 학생 비중이 지난해 18.8%, 2022년 14.0%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며 “교육감들이 일반고 위주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고를 줄일 경우 예상되는 학부모 반발 때문에 교육청은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4∼2023년 고졸 인력 공급이 수요보다 210만 명 부족하다고 추정한다. 서울 D특성화고 교사는 “과잉 학력자만 배출되면 안 된다”며 “학생들이 무조건 일반고에 진학해 제 꿈을 찾지 못하고 실업자로 전락하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특성화고#무상교육#학령인구#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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