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정원 140cm 유리벽, 투신 못막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개장 열흘만에 한밤 사망사고

서울역 고가도로 폐쇄 후 문을 연 보행전용로 ‘서울로 7017’에서 외국인 남성이 투신해 사망했다. 개장 열흘째 발생한 사고다. 투신이나 낙하물 추락은 서울로 7017 계획 단계부터 우려됐다. 서울시가 안전 대책을 부실하게 준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30일 서울시와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29일 오후 11시 50분경 카자흐스탄 출신 남성 P 씨(31)가 서울로 7017에서 15m 아래 차도로 추락했다. P 씨는 서울백병원으로 이송됐으나 30일 오전 7시 50분경 숨졌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P 씨의 다이어리에는 ‘카지노에서 2000달러가량을 잃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P 씨는 서울로 7017에 설치된 투명 안전벽을 넘어 투신했다. 안전벽은 보행로 양쪽으로 설치돼 있다. 높이는 1.4m로 초등 3, 4학년생 키와 비슷하다. 법에서 정한 안전펜스 기준(1.2m)보다 높지만 어른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넘을 수 있다. P 씨가 추락한 난간 바로 아래는 충정로역 방면 4차로가 있다. 사고 시간이 한밤중이라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았다. 만약 낮 시간대였으면 2차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열차가 지나는 서울역 철로 위쪽의 보행로에는 안전벽 위로 약 1.5m의 철망이 추가로 설치돼 있다.

위급한 상황에 필요한 비상호출벨도 찾기가 쉽지 않다. 사고 지점에서 5m가량 떨어진 곳에 비상호출벨이 붙은 가로등이 있었다. 그러나 비상호출벨을 찾을 수 있는 표지판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야간에 신속한 대처가 어려워 보였다. 공원 관리사무소 측이 제때 소방당국에 신고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시 지침에 따르면 사건이 접수되면 관리사무소 측은 경찰과 소방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관리사무소 측은 P 씨가 투신 소동을 벌이기 시작하고 17분 뒤 경찰에 최초로 신고했다. 119에는 따로 전화하지 않았다. 경찰의 신고로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P 씨가 투신한 뒤였다.


서울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 반대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수차례 안전성을 강조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한 탓이다. 서울시는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야간 경비 인력을 두 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5명이다. 1명이 240m가량을 맡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비 인력을 늘려 투신 시도를 신속히 감지하고 인근 경찰이나 소방당국에 빠르게 연락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로 7017의 특성을 감안할 때 지금보다 강화된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신뿐 아니라 방문객이 유리병이나 캔을 난간 밖으로 던지거나 사물이 떨어지면 길 아래를 지나는 자동차나 사람에게 떨어져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런 제한 없이 불특정 다수가 통행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낙하 방지 펜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지연 lima@donga.com·황태호 기자
#서울로 7017#자살#유리벽#투신#외국인#카자흐스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