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日 근대화 야욕이 짓밟은 작은 섬의 평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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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의 역사사회학/이시하라 슌 지음·김이인 옮김/288쪽·1만8000원·글항아리

1945년 이오 열도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직후의 미 해군 군함과 장갑차들. 글항아리 제공
1945년 이오 열도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직후의 미 해군 군함과 장갑차들. 글항아리 제공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갈라파고스 섬’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과학이 성립하려면 외부 변수를 철저히 통제한 실험집단이 필수인데, 대륙과 분리된 갈라파고스 생태계는 알맞은 여건을 제공했다. 운 좋게도 다윈은 최적의 ‘진화 실험장’을 찾아낸 것이다.

사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사회과학은 이런 행운을 얻기가 훨씬 어렵다. 사람을 외딴 데 가둬놓고 관찰하는 건 일단 윤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본토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동시에 오랜 기간 무인도였던 곳으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주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도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무정부(無政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면 이만큼 사회과학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소재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초점을 맞춘 일본령 오가사와라(小笠原) 제도는 이 같은 조건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도쿄에서 1000km나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될 정도로 태곳적 생태계를 간직했을 뿐 19세기 초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다. 16세기부터 점차 세계를 휩쓴 유럽식 근대 자본주의 자장(磁場)에서 오랫동안 벗어나 있었기에 오가사와라는 완전한 주변부의 관점에서 근대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됐다. 저자는 “작은 군도의 시점에서 근대 세계를 다시 파악하고자 했다”고 썼다.

오가사와라가 인류사에 등장한 건 근대 자본주의로 촉발된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다. 19세기 들어 유럽과 미국의 자본이 연료용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 대규모 포경선을 태평양에 띄웠는데, 가혹한 노동 착취에 시달린 선원들이 배를 탈출해 오가사와라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근대 자본주의의 밑바닥을 경험한 선원들은 새로운 낙원에서 계층과 차별이 없는 공동체를 일궈냈다. 글로벌 자본과 제국주의 침탈에서 벗어난 독특한 사회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서구 근대화를 추진한 일본 메이지 정부가 19세기 후반부터 오가사와라 제도를 식민화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게 된다. 메이지 정부는 선주민들에 대한 직접 통치에 이어 플랜테이션 농업을 통해 천혜의 자연을 무차별 개발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거점으로 군도(群島)를 활용했다.

태평양의 군도들은 종전 이후에도 일본 본토와 달리 끊임없는 수탈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오가사와라 제도와 이오 열도를 점령한 미군은 핵무기를 배치한 뒤 전쟁 당시 일본 본토로 소환된 주민들의 귀향을 막았다. 졸지에 타향살이에 내몰린 오가사와라 주민들은 본토에서 빈곤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와 냉전의 폐해를 고스란히 겪은 한반도 역사와 오버랩되는 지점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오가사와라로 대표되는 주변부의 관점을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도 적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후 잠재적 핵무장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도호쿠 지방 같은 가난한 어촌에 원전을 세워 오가사와라처럼 국내 식민지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태평양 섬들이 강요받은 난민화와 방사능 피폭 경험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초래한 난민화, 피폭 경험과 서로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군도의 역사사회학#이시하라 슌#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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