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남영동 고문실·평화의 소녀상… 역사가 스며든 건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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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김명식 지음/264쪽·1만5000원·뜨인돌

도시의 상징 중엔 특정 건축물과 관련된 것이 많다. 파리의 개선문,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 서울의 광화문처럼 말이다. 건축의 매력이자 특징은 이처럼 개인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도시와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이른바 건축의 사회성이다. 이 책은 건축이 역사를 어떻게 표현하고, 기억해 내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도시와 건축 등을 공부하고 2014년 한국으로 돌아온 건축가다. 책은 2015년 저자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회적 고통과 기억의 공간: 아픔의 건축과 도시 읽기’ 강좌 내용을 바탕으로 풀어냈다.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이 풍부하게 제시돼 있지만 그보다는 일반 시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진 자료와 역사적 맥락 해설이 주를 이룬다. 각 장마다 강좌에서 다뤄졌던 토론 내용도 함께 있다.

책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뻗어 나가고, 의미가 확장되도록 설계됐다. 공간에서 건축으로, 건물에서 도시로 전개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 현대 건축의 아이콘 김수근이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고문을 은폐하기 위해 설치한 소형 창문과 비명 소리만 울려 퍼지도록 고안된 벽면, 그리고 심리적 고통을 배가시키는 김수근 특유의 나선형 계단까지. 저자는 한국 현대 건축물에서 가장 악랄한 공간으로 표현하며 건축가의 윤리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건축가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잊히고 있는 건축물들을 조명하며 한국 사회의 ‘망각성’에 대한 논의가 책의 중후반을 차지한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길거리에 서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철거 위협에 늘 시달리고 있고, 서울 마포구의 한 가정집을 개조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찾기 힘든 위치와 협소한 공간 등으로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독일 베를린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는 세계적인 명소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이를 시민의 삶 속에 녹여들게 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공감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건축을 풀어낸 저자의 통찰이, 매일 보는 건축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독자에게 선물해줄 듯하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김명식#남영동 고문실#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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