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태훈]거대 개혁도 일상을 바꾸는 변화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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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정치부 차장
이태훈 정치부 차장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예외 없이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 다름 아닌 ‘거대함’이다. 선거 구호부터 거창하고, 개혁의 대상 기간도 짧게는 전 정권 5년부터 길게는 일제강점기까지 한 세기에 이르기도 한다. 공약 이행에 드는 재원도 보통 연평균 30조∼40조 원, 많게는 연간 100조 원이다. 복지를 늘려준다니 반갑긴 한데 여윳돈 100만 원 만질 기회도 흔치 않은 일반 국민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큰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 살리기 같은 크고 중대한 이슈에 집중하는 것은 시급한 국정 안정을 위한 당연한 책무이고, 국정을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는 순서다.

그렇지만 거대 정책은 작은 일상으로 구체화될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창조경제는 개념은 컸지만 정체성이 모호해 논란을 벌이다 별 성과 없이 좌초했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는 거대 담론보다는 국민 생활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일상생활의 폐해’를 해소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일례로 수도권 시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가장 큰 애로는 교통체증이다. 그중에서도 출근시간에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달래내고개 구간은 만성 정체로 악명이 높다. 경기 판교를 지나 서울 양재, 서초, 반포나들목까지 이어지는 약 10km 구간은 정체가 너무 심해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백만 명의 경기 남부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필자가 약 5년간 경부고속도로로 출퇴근을 하면서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이 구간의 악성 정체를 야기하는 주범은 ‘버스전용차로가 끝나는 지점’이라고 결론 내렸다. 현재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의 1차로 버스전용차선은 서울 반포 나들목 직전까지 그어져 있다. 그렇다 보니 1차로를 달리던 고속버스와 광역버스들이 반포 나들목으로 진출하기 위해 갑자기 우측으로 거의 90도를 꺾으며 차로 변경을 한다. 그 결과 대형버스들이 차벽처럼 2, 3, 4, 5차로를 틀어막게 되고, 일반 차로를 달리던 차들이 버스에 가로막혀 달래내고개까지 답답한 정체가 이어지는 것이다. 1분 1초가 귀한 출근시간에 직진하려는 일반 차로의 자가용과, 1차로에서 반포 나들목을 향해 고속도로를 틀어막고 선 버스들이 엉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그럼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자동차가 너무 많다 보니 뾰족한 대안을 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현재 반포 나들목 직전까지 그어진 버스전용차로의 차선을 양재 나들목 전에서 끊어버리면 체증 해소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반포 나들목을 통해 강남으로 빠져나갈 버스들이 수 km 전부터 조금씩 우측으로 미리 차로를 변경하게 되고, 그러면 버스의 급격한 90도 우향 변침에 따른 차벽화 현상, 그로 인한 고속도로 차단 효과가 줄어 2∼5차로의 소통이 더 원활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교통체증은 매일 반복돼 무뎌져서 그렇지 사실 엄청난 사회 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 전국 구석구석에는 교통체증과 같은 생활 속 폐해들이 널려 있다. 원래 이런 생활 불편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신경을 써야 하는 업무이지만 대통령이 분위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국민 생활의 질(質)도 크게 달라진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면 중앙 부처의 공무원들이 민생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하고, 또 지자체와 경찰 등으로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가 확산됨으로써 국민의 일상이 개선되는 선순환 효과가 날 수 있다. 따라서 새 정부가 추진할 큰 개혁도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부터 시작된다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우리 삶의 작은 일상이 모여서 대한민국호가 되듯이 말이다.
 
이태훈 정치부 차장 jefflee@donga.com
#교통체증#버스전용차선#경부고속도로 달래내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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