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평가’ 틀에 갇혀… 창의성 막는 국내 대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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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7주년/4차 산업혁명, 인재에 달렸다]교수 재량 맡기는 MIT와 대조

학생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려면 줄 세우기식 평가를 지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국내 대학은 대부분 엄격한 상대평가를 적용한다. 특히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는 학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다른 학과보다 더 엄격한 상대평가 규칙을 적용한다. 김재정 서울대 화공학부장은 “화공학부는 보통 A 20∼30%, B 30∼40%, C 30∼50%의 비율을 적용한다”며 “다른 학과들은 이보다 좀 후한 편”이라고 말했다.

한양대는 A 30%, B 40%까지만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교수 재량에 따라 학점을 줄 수 있다. A와 B학점은 정해진 비율 이상 주고 싶어도 시스템상 입력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미세한 소수점 차이로 학점이 갈리는 건 흔한 일이다.

대학이 상대평가 체제를 고수하게 된 건 대학구조개혁 평가와 맞물려 있다. 교육부는 2014년 12월까지 대학구조개혁 평가 항목에 ‘성적 분포의 적절성’(1점)을 포함시켰다. 상대평가를 하고 있는지 반영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학교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겠다며 2015년 1월 해당 항목을 삭제했다. 그 대신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관리 노력’ 항목 배점을 3점에서 4점으로 올렸다. 그러나 자유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하거나 절대평가로 전환하려는 대학은 거의 없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도 상대평가 권고 비율은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교수 재량이라 어떤 학생도 교수가 A나 B학점을 최대 몇 %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1학년 1학기에는 학점을 매기지 않는다. 해당 과목 이수 여부를 ‘P&R(Pass&No Record)’로 표시한다.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고, 아직 시험 방식에 익숙지 않은 학생의 적응을 돕기 위해서다.

국내의 경우 포스텍은 평가를 교수 재량에 맡기는 쪽이다. 포스텍은 공대 11개 학과 전체 학생 수가 320명이다. 대형 강좌라고 해도 수강생이 최대 50∼60명이라 대부분 과목이 절대평가를 한다. 포스텍은 앞으로 ‘Pass/Fail’ 평가도 확대할 방침이다. 포스텍 관계자는 “학생이 학점의 노예가 되는 것을 방지하고 창의력을 키우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평가에 대한 국내 학생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서울대 이보원 씨(20)는 “답이 맞고 풀이 과정에 논리적인 문제가 없으면 수업시간에 배운 방식이 아니어도 정답으로 인정해준다”며 “상대평가 때문에 창의적 사고가 제한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한양대 A 씨는 “대학원 갈 때나 취업할 때 학점이 중요해 신경이 쓰인다”며 “학문의 재미를 느끼기보다 문제 푸는 것 위주로 접근하게 된다”고 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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