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 “승진연한 맞춰 돌아가며 자리 맡아… 적임자 배치 人事개념 자체가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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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前인사혁신처장 4월 발간 회고록서 공직사회 신랄 비판

2014년 11월 신설된 인사혁신처의 초대 처장으로 1년 7개월간 조직을 이끈 이근면 전 처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14년 11월 신설된 인사혁신처의 초대 처장으로 1년 7개월간 조직을 이끈 이근면 전 처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미 대한민국은 400조 원(연간 국가예산) 규모로 컸는데, 이를 운용하는 공무원 조직의 행태는 100조 원 이하였던 2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30년 넘게 삼성그룹에서 인사 업무를 맡다가 ‘어공’(어쩌다 공무원·직업공무원과 대비되는 뜻의 은어)이 된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이 현장에서 겪은 공무원 사회는 모순 덩어리였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이른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그해 11월 인사혁신처를 신설했다. 당시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 소관이던 국가공무원 인사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다. 그 수장으로 기업인 출신의 이 전 처장이 부임하면서 화제가 됐다.

그는 다음 달 3일 1년 7개월간 인사혁신처를 이끌며 보고 느낀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의 민낯과 제언을 담은 책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사진)를 출간한다. 동아일보가 29일 이 책을 사전 입수해 핵심 내용을 소개한다.

○ 그들만의 리그, 개방형 직위

“타 부처 장관님들로부터 개방형 직위에 자기 부처 출신 공무원을 임용시켜야 한다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부처) 내부적으로 상황 보고를 하고 인사혁신처장에게 전화 한 통 넣어달라는 보고가 올라갔을 것이 뻔하다.”

개방형 직위는 해당 분야에서 경력을 가진 민간인도 임용할 수 있도록 1999년 도입됐다. 하지만 아직도 개방형 직위 비중은 정부 전체 국·과장급 직위 3796개 중 442개로 11.6%에 불과하다. 실제 민간인이 임용된 직위는 111개(5.9%)로 더 적다.

이 전 처장은 “개방형 직위를 지정하는 단계부터 기존 공무원과 민간인은 출발선이 다르다”며 “두루뭉술한 홈페이지 공고 외에는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거나 영입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아무리 선발에 공정성을 기해도 최종 3배수 후보자에는 공무원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밥그릇을 지키려는 공직사회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이 전 처장은 진단했다. “승진 외에 메리트가 별로 없는 공무원이 자리를 개방하라는 요구를 쉬이 수용할 수 없는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면서도 “하루빨리 공직이 진정한 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 승진하면 떠나야 하는 조직

“정부 부처 자리는 저마다 ‘자릿값’이 있다. 복수직 서기관(과장 직위 없는 서기관)이 과장 직위로 승진하거나 6급 주무관이 사무관으로 승진하면 다른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일을 잘해서 승진시키면 다른 업무를 하러 떠나야 하는 기이한 구조다.”

이 전 처장은 “대부분 조직에선 일을 잘하면 보상으로 승진을 하고 그 업무에 더 큰 결정권을 가지지만 공무원 조직은 부서별, 직급별로 TO(티오·정원)가 엄격히 정해져 있다”고 탄식했다. 이 같은 경직된 조직운용 체계는 이 전 처장이 공무원 조직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본 순환보직을 타파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는 “중앙부처 실·국장급 직위의 평균 재직 기간은 1년 1개월, 일반직 전체를 봐도 3명 중 2명꼴로 자리를 옮긴다”며 “적임자를 배치하는 인사 관리의 개념 자체가 없이 승진 연한에 맞춰 돌아가며 자리를 맡는다”고 어이없어했다.

인재 계발 강화, 성과 중심의 조직 관리 등 새로운 정책도 경직성에 가로막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우수자에게 특별 승진을 확대하면 그만큼 일반 승진이 줄어들어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성과 미흡 공무원을 재교육시키려고 해도 교육기간이 6개월 미만이면 결원(缺員) 보충이 되지 않는다. 공석을 우려한 부처들은 아예 성과 미흡자가 없다고 한다.”

자신이 장(長)으로 있던 인사혁신처에서조차 발탁성, 문책성 인사를 하려고 해도 직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이 전 처장은 “직위와 직책을 분리하거나 직위별로 보임이 가능한 직급을 늘려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넘겨보지 못하는 부처 ‘칸막이’

“각 기관장에게 생산적 조직 문화 조성의 의무를 부여하도록 근거 조항을 국가공무원법에 두려 했더니 ‘조직’은 행정자치부의 소관이니 ‘인사문화’로 변경해 달라는 요구도 해왔다.”

정부에 들어와서 목도한 부처 간 영역 다툼을 이 전 처장은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성과가 잘 나는 ‘좋은 업무’는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고 중복돼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둘째, 반대로 시끄럽고 논란이 예상되는 업무는 주인 없이 겉돌기 일쑤다.

“공무원노조 관리 업무는 고용노동부와 행정자치부, 인사혁신처의 3개 부처가 나눠 수행하고 있는데 각각 법 해석, 일부 불법행위 단속, 협력사업과 교육 등 모두 최소 기능만 행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총괄 컨트롤타워를 누구도 맡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불법행위를 방치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셋째, 자기 부처의 영역에 타 부처의 침범을 용인하지 않는 문화 역시 팽배하다. 특히 예산과 조직 업무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와 행자부의 행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는 “예산이나 조직을 소관하는 갑(甲) 부처와 일을 하려면 주고받기 협상을 해야 했다. 그 부처들은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려나갈 수 있는 구조로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양식은 이미 학습돼 몸에 배어 있었다”고 썼다.

이 전 처장은 “한국 공무원 사회가 ‘S급 인재’를 뽑아 ‘B급 인력’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되돌아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이근면#공직사회#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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