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리더’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이 말하는 야구와 인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15시 21분


코멘트
테오 엡스타인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사장
테오 엡스타인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사장
“말도 안 되죠. 난 우리 집 개가 집 안에 쉬하는 것도 못 막는 사람인걸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에 뽑힌 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얼마 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 지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The World’s 50 Greatest Leaders)‘을 선정해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명함도 못 내민 가운데 2위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 3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차지했다. 1위에 오른 사람은 테오 엡스타인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사장이었다.

일개 야구단 사장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바라보는 엡스타인 사장은 고(故)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엡스타인 사장이 이끈 컵스는 지난해 클리블랜드를 꺾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무려 108년 만의 우승이었다. 보스턴 단장이던 2004년에는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팀을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포춘 지가 평가한 성공의 이유는 혁신과 발상의 전환이었다. 스타들이 즐비했던 보스턴에서 그는 당시로는 낯선 개념에 가깝던 세이버 매트릭스(통계를 이용한 과학적 야구 분석 기법)를 팀에 접목시켰다. 너도나도 세이버 매트릭스를 쓰는 시대가 되자 컵스에서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2011년 말 컵스 사장으로 부임한 뒤 그는 실력보다는 인성이 좋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스카우트들은 선수들을 평가할 때 기록이나 수치보다 그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교우 관계는 어떤지를 우선해야 했다. 이를 위해 부모나 형제, 여자친구, 심지어는 상대편 선수에게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컵스의 우승 주역들은 모두 그런 기준으로 뽑은 선수들이다. 엡스타인 사장은 ESPN에 보낸 수상 소감에서 “전 우리 팀 안에서도 최고의 리더가 아니에요. 최고의 리더는 우리 선수들이죠”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엡스타인 사장의 진정한 혜안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대목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만약 벤 조브리스트의 타구가 3인치(약 8cm)만 라인 밖으로 벗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실패한 5년에 대한 비난을 받아야 했을 겁니다.”

지난해 11월 3일 월드시리즈 7차전이었다. 8회 2사후까지 컵스는 6-3으로 앞서고 있었고, 마운드에는 최고의 마무리 아롤디스 차프만이 올라왔다. 최고 마무리로 평가받던 차프만은 거짓말처럼 무너졌고 6-6 동점을 허용했다. 연장 10회에 팀을 살린 건 3루수 옆을 날카롭게 빠져나간 조브리스트의 좌익선상 2루타였다.

흔히 야구를 인치의 경기라고 한다. 이날 천당과 지옥을 가른 것도 불과 8cm 차이였다. 만약 조브리스트의 타구가 파울이 됐고, 팀이 졌다면 엡스타인 사장이 위대한 리더에 뽑히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5년간 5000만 달러라는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이유로 더 큰 비난에 시달려야 했을 수도 있다.

성공과 실패는 이처럼 종이 한 장 차이다. 성공했다고 날뛰며 좋아할 일도 아니고, 실패했다고 지나치게 자책할 일도 아니다. 엡스타인 사장 부임 후 컵스는 3년 연속 지구 최하위를 했다. 강팀이 된 건 불과 2년 전부터다. 엡스타인 사장의 담담한 소감은 그래서 더 큰 울림을 준다. 그의 말처럼 그게 야구고, 그런 게 인생인 것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