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반장’ 서로 손사래… 35%가 공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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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통-반장제’ 유명무실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에 사는 전업주부 장선정 씨(36)는 반상회에 나가본 적이 없다. 주소지의 통장과 반장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파트 입주자회의나 인터넷의 ‘지역 맘(mom) 카페’ 온·오프라인 모임에는 꾸준히 참여해 동네 돌아가는 정보를 얻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장 씨는 “어릴 때 봤던 ‘반장 아주머니’가 요즘도 계신지 몰랐다”며 “중년층 이상의 나이든 분들이 하셨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30여 년 전 시작된 통·반장 제도가 유명무실하다. 서울 시내에는 동의 하부 조직인 통이 1만2000여 곳, 반은 9만7000여 곳이 있다. 이들 통·반의 장(長)인 통·반장은 동장의 감독을 받아 행정시책을 전달하고 주민 여론을 수렴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 직책. 하지만 통장의 경우 많게는 10%, 반장은 30% 넘게 공석이다.

28일 강남구에 따르면 최근 구내 통·반장을 조사해 보니 통장은 정원 833명 중 54명, 반장은 5534명이 있어야 하지만 빈자리가 2000여 명(35%)이나 됐다. 공석 비중이 가장 높은 삼성2동은 10명 중 7명이 비어 있는 상태였다. 서대문구가 2015년 조사했을 때도 통장의 11%(59명), 반장의 35%(1476명)가 공석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른 자치구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있더라도 형식적으로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마포구의 한 반에선 주민들이 분기마다 돌아가며 반장을 맡는다. 이른바 ‘돌림반장’이다. 활동은 동주민센터에서 배부하는 반상회보 수령 정도다. 한 주민은 “1년에 활동비 5만 원씩 주는 게 전부라 누가 맡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연 200만∼300만 원씩의 활동비를 받는 통장은 참여율이 높은 편이지만 80% 가까이가 50세 이상이어서 개인적 성향이 강한 40대 이하의 주민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통장을 맡고 있는 여주란 씨(61·여)는 “저녁 늦게까지 집이 비어 있거나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는 주민이 많다. 사람이 있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해도 ‘다음에 오시라’고 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각 자치구들은 통·반장 조직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름만 걸어놓거나 고령으로 활동이 불편한 통·반장을 해촉하고, 실제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거주지별로 통·반을 재조정하고 있다. 지역 사정에 밝은 통·반장을 복지 사각지대 지원 업무에 투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권위주의 정부 시절 도입된 통·반장 제도가 지금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당초 통·반장에게 주어진 역할은 주민 여론 수렴보다는 정부 시책 전달과 주민의 이동 상황 파악, 전시 대비 비상 연락 및 생필품 배급이 주였다. 지방자치의 풀뿌리 조직이라기보다는 행정조직의 말단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정부 업무 전산화와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통·반장의 정보력 우위가 사라진 데다 지역조합이나 커뮤니티 같은 자생적 공동체가 생겨나면서 역할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김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행정 보조 기능을 수행하는 ‘행정 통·반장’ 대신 주민이 선출해 마을공동체 형성과 자치 사업을 수행하는 ‘자치 통·반장’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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