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산업 구조조정의 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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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201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식경제부를 산업통상자원부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 기능을 상공(商工) 부처로 이관해 명실상부한 실물경제 주무부처로 바꾸겠다는 취지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업무 재편이라 관가에서는 “산업부가 실속을 톡톡히 챙겼다”는 말이 나왔다.

정작 산업부의 분위기는 달랐다. 정권 교체 때마다 ‘통상산업부(김영삼 정부)→산업자원부(김대중·노무현 정부)→지경부(이명박 정부)’로 재편되면서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곳이었다. 엉겁결에 받은 통상 업무에 만족해선 안 되고 작은 것 하나라도 타 부처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산업부에 조선·해양플랜트 업무를 부활하는 해양수산부로 넘기라는 일각의 주장은 ‘턱도 없는 소리’였다. 대학교수, 협회, 업계를 총동원해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 “반도체, 자동차를 잇는 차세대 먹거리 산업인 해양플랜트를 어떻게 문외한인 해수부에 넘기냐”고 주장했다.

겉으로는 수출 진흥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진짜 속내는 따로 있지 않았겠냐는 게 당시 관가의 해석이었다. 주력 산업인 조선업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타 부처에 넘길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수부에 해양플랜트 업무가 넘어갔다면 관련 연구개발(R&D) 예산 수백억 원과 이를 담당하는 과 단위의 조직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상황이었다. 퇴직 관료가 낙하산 임원으로 내려가는 협회는 덤이다. 결과적으로 산업부는 업무를 사수했다. 그해 12월 산업부는 “해양플랜트에 민관 합동으로 9000억 원을 투자해 일자리 1만 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4년여가 지난 지금 결과는 참담하다. 조선·해양플랜트업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전망하는 올해 실업자 수만 6만 명이다. 2015년 4조 원대 자금을 투입한 대우조선해양에 출자 전환을 포함해 6조 원의 추가 자금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라의 주력 산업이 붕괴 위기에 놓였지만 산업부는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해양플랜트 업무 사수를 위해 보였던 결기는 찾아볼 수 없다.

산업부 관료들의 태도는 같은 정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협조적이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대우조선 신규자금 지원 방안을 결정하는 23일 관계장관회의에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힘겨운 씨름을 하던 지난해 9월 정만기 산업부 1차관은 “정부가 나서서 진행하는 구조조정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라며 김 빼는 소리를 했다. 정부가 한 몸이 돼 추진해도 될까 말까 한 구조조정이라는 난제 앞에서 담당 과장은 “결론이 나면 따르겠지만 우리는 금융당국과 생각이 다르다”며 어깃장을 놨다. 해외 컨설팅사 맥킨지에 10억 원을 들여 지난해 조선업 구조조정 컨설팅 보고서를 의뢰해 놓고 업계가 반발하자 ‘참고용’이라며 휴지 조각 취급을 했다.

이쯤 되자 ‘산업부가 구조조정의 적(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물 산업부처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마저 갖게 한다. 주력 산업의 2, 3년 뒤조차 내다볼 줄 모르고 부처 이름을 내건 제대로 된 구조조정 보고서 하나 내놓지 못하는 게 산업부의 현주소다. 수출 드라이브 창구로 상공부를 활용했던 박정희 정부를 제외하면 역대 정부는 모두 산업부처를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했다. 차기 정권을 잡겠다는 대선 주자라면 문제투성이인 산업부에 대한 구조조정 복안을 내놔야 한다. 존치할 이유를 못 찾겠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산업 구조조정#정권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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