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이기진]대전시 청년정책 ‘헛발질’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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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대전충청취재본부장
이기진·대전충청취재본부장
내 가게 놔둔 채 남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하고, 월세 전액을 지원받아도 문 닫고….

얼핏 이해하기 힘들지만 지금 대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대전 중구 태평동 ‘청년 맛잇길’과 유천동 ‘청춘삼거리’에 있는 20개 식당의 현주소다. 청년 맛잇길과 청춘삼거리는 대전시와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이 지난해 7억 원 넘게 들여 조성한 청년식당 프로젝트다. 하지만 청년들의 외식창업을 지원하겠다며 문을 연 이곳 식당들은 1년도 채 안 돼 대부분 매물로 나왔거나 폐업했다. 막대한 예산이 안개처럼 사라진 셈이다.

대전시는 올해 시정목표 1위를 ‘청년정책’으로 꼽았다. 올해 추경예산안에 편성된 청년 정책 관련 예산만도 153억 원으로 가용예산의 절반에 가깝다. 그만큼 청년문제가 절박하다는 얘기다. 각종 시책도 잇달아 내놓았다. 중앙시장 내 중앙메가프라자의 빈 점포에 15억 원을 지원해 청년 점포 20개를 만들겠다는 구상 등 11개 청년사업을 발표하고 전담 부서도 꾸몄다. 권선택 대전시장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구상과 행보가 ‘참신하고 획기적’이라는 생각보다 태평동이나 유천동처럼 또다시 ‘헛발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하나만 예로 들자. 대전시는 한빛탑 주변 광장에 컨테이너박스 10개를 설치해 청년들에게 카페와 식당 공방 등으로 활용토록 한다는 ‘청년 창업 플라자’ 조성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엑스포과학공원 재창조 사업의 마중물로 올 6월부터 8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이 일부에 알려지자 ‘탁상행정’도 아닌 ‘허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전에서 꽤 유명한 어느 청년 셰프는 “사람이 많이 찾는 시장인 태평동과 유천동 청년식당도 문 닫는 마당에 누가 허허벌판에 있는 거기로 밥 먹으러 가고 무더운 데 누가 거기서 일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외식조리 분야의 한 대학 교수는 “한여름에 컨테이너 안에서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발상”이라고 비꼬았다.

이 계획은 17일 대전세종연구원 등의 주최로 열린 ‘청년대전을 위한 정책 배틀’ 세미나에서도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공무원들만의 생각이라는 얘기다.

대전시가 백화점 물건처럼 내놓는 청년정책들이 ‘헛발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청년 당사자 및 해당 전문가 등과 끊임없는 소통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기진·대전충청취재본부장 doyoce@donga.com
#대전 청년정책#청년 맛잇길#청춘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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