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원의원-주지사 ‘준비된 대통령’… 메르켈, 하원의원 거쳐 장관만 10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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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뉴리더십 세우자]국정 훈련기간 갖는 해외 지도자
30, 40대부터 실전경험 쌓아… 오랜 기간동안 역량검증 거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난맥상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그가 공직 경험이 없는 역사상 첫 대통령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200년이 넘는 민주주의 경험 등 한국과 여건이 다르지만 미국은 대통령이 다양한 공직 경험을 갖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상원의원과 주지사는 ‘세계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코스로 꼽힌다.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당시 44세) 이후 최연소 대통령(48세)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2008년 11월 당선 전까지 민주당 소속으로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을 지내며 국정 현안 전반을 익혔다. 미국 각 주를 2명씩 대표해 총 100명으로 구성된 상원의원은 모두가 대통령 후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과 함께 국정 현안에 대한 통찰력과 철학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임기 6년의 상원의원을 거치면 전공 상임위원회는 물론이고 외교 국방 금융 복지 세제 등 국정 현안의 주요 흐름을 대부분 다룰 수밖에 없다”며 “상원의원들은 사실상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백악관 안주인을 거친 뒤 뉴욕 주 상원의원을 지냈고 케네디 전 대통령도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출신이다. 오바마의 파트너였던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은 델라웨어 주에서 30년 넘게 상원의원을 지냈다.

주지사도 국정을 미리 학습할 수 있는 엘리트 코스다. 캘리포니아 같은 대형 주는 웬만한 중소형 국가 수준의 경제 및 통상 규모와 인구를 갖고 있다. 아직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 대통령으로 꼽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영화배우 출신이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치면서 국정 역량을 쌓았고 이를 토대로 백악관에 도전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텍사스 주지사를 지냈다.

미 정치전문매체 인사이드고브가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지낸 역대 대통령은 오바마(44대)까지 각각 16명과 17명에 이른다. 하원의원 출신은 19명으로 더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후로 한정하면 총 12명의 대통령 가운데 상·하원의원이나 주지사 경력 없이 대통령이 된 인물은 연합군 최고사령관 출신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가 유일하다. 사업가 출신의 현직 트럼프도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유럽은 선출직 의원을 지낸 후 관직 경험을 쌓아야만 더 높은 직을 맡을 수 있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특히 내각제인 영국과 독일은 더욱 그렇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6세이던 1990년 기민당 하원의원이 된 이후 이듬해부터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청소년장관, 환경장관 등 10년의 장관 시절을 보냈다. 이어 기민당 원내총무로 행정과 정치 경험을 두루 쌓은 뒤 11년째 총리직을 맡고 있다.

잉글랜드은행에서 첫 사회활동을 시작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1997년 41세의 나이에 국회의원이 됐지만 30세부터 꾸준히 정치 활동을 해 왔다. 야당 시절인 초선 때부터 예비 교육고용차관으로 예비 내각(섀도캐비닛)에 참가한 이후 예비 교통장관, 예비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 예비 노동연금장관 등을 지내며 꾸준히 행정 경험을 쌓았다. 보수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후에는 줄곧 내무장관을 지내다 이번에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일본 정치인들도 지방에서 중앙, 중앙에서도 요직으로 진출해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으로 이뤄진다. 먼저 지방자치단체 의원이나 국회의원 활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면 정당의 요직을 맡아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하고 정부 각료 등으로 발탁된다. 이 과정은 대부분 수십 년이 걸리며 이 세월 자체가 검증 기간이 되는 셈이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파리=동정민 / 도쿄=서영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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