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이 아닌, 거친 길 위에 진리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세계폭주/마루야마 겐지 지음·김난주 옮김/488쪽·1만6500원·바다출판사

“책을 몇백 권 읽어도 터득하지 못한 진리가 50시시짜리 소형 오토바이에 담겨 있었고, 그것은 불과 몇 킬로미터만 달려도 몸에 배어들었다.”

서른 전후, 젊은 시절의 마루야마 겐지(74)는 말한다. “포장된 길을 달려서는 들끓는 피를 잠재울 수 없다”고. 그에게 ‘질주’는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프로드 바이크와 사륜구동차를 끌고 호주의 사막을 내달린다. 그에게 모터사이클은 과시하고 허세 부리는 수단이 아니다. 글을 쓰며 쌓인 정신적인 피로와 긴장감을 덜어내는 하나의 의식이자 인간으로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한 수단이다.

거친 길을 무작정 달리면서 작가는 내가 누구인지,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 세상은 어떤 곳인지 탐구한다. 탐구의 결과물은 현학적인 언어가 아닌 진솔한 언어로 정리된다.

작가는 시종일관 포장된 길을 거부한다. 궂은 길을 달리며 드라이버의 한계를 시험하는 자동차 레이스인 아프리카 케냐의 ‘사파리 랠리’ 현장을 찾아가기도 한다. 무조건 이기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헬기와 경비행기 같은 첨단 도구를 사들이는 자동차 회사들, 눈앞의 볼거리를 위해 내심 사고가 나길 기대하는 구경꾼 등 랠리 경주를 둘러싼 다양한 움직임을 살핀다. 랠리 현장에서 이리저리 두리번대던 작가의 시선은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달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머문다. 어쩌면 작가 자신의 삶과 닮은 그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거친 자연 속에서 빠르게 내달리던 작가는 고요한 노르웨이를 찾아가거나, 소설을 쓰기 위해 무작정 대형 유조선에 올라타기도 한다. 단지 책의 소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왜 책을 쓰는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한계까지 거칠게 몰아붙이는 여행을 통해 작가는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부딪쳐야 하고 장애물도 수없이 이겨 나가야 한다. 이미지만으로 계속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세계폭주#마루야마 겐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