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민 “우리는 테러가 두렵지 않다”…용의자는 극단주의자 英남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4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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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한 우리는 두렵지 않다.”

영국 버킹엄궁 앞을 지나던 택시 기사는 버킹엄궁에 걸린 깃발을 가리키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킹엄궁에는 여왕이 궁 안에 있을 경우를 상징하는 로얄 스탠다드 깃발이 걸려 있었다. 여왕이 출타 중에는 유니온 잭 깃발이 달려 있다. 그는 “한국 관광객들이 전혀 두려움 없이 계속 방문해도 된다”며 “우리는 두렵지 않다”는 말을 반복했다.

22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근처에서 용의자를 포함해 5명이 사망하고 최소 40명이 다치는 대형 테러를 겪은 영국 시민들은 파리, 브뤼셀, 베를린 일로만 생각했던 이슬람 추정 세력의 테러를 처음 당한 공포감과 그래도 테러리스트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듯 했다. 실제로 아직 테러를 처음 경험해 연이어 터진 테러로 상처를 많이 입은 파리 시민들보다는 조금은 더 여유로운 모습도 보였다.

런던 시민 이안 어쉬비 씨는 “추모 꽃을 놓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대로 살면 된다. 테러리스트에게 우리는 두렵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시민들은 23일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비무장 상태로 테러범의 칼에 찔려 사망한 키스 파머 경관을 향한 애도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가족을 위한 성금 모금액은 애초 목표액인 10만 파운드를 훌쩍 넘어 32만 파운드(약 4억4800만 원)를 넘겼다. 트위터에는 팔머가 사망하기 45분 전 한 미국 관광객과 환하게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이 올라왔다. 지난해 6월 극우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한 조 콕스 하원의원의 남편인 브렌던 콕스는 파머 경관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범인의 이름은 중요치 않다. 난 이 이름(키스 파머)을 기억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트라팔가 광장에는 “나는 무슬림이다”는 티셔츠를 입은 무슬림 단체 속 멤버들도 나와 테러를 규탄하고 연대감을 표시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테러 공격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들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영국 경찰은 용의자는 런던 외곽 도시 다트퍼드에서 태어난 52살 칼리드 마수드로 극단주의가 의심되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그는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신체 중상해와 공격무기 소지, 공공질서 위반 등의 전과가 있고 급진주의 연계 혐의로 영국 보안정보국(MI5)의 조사망에 오른 적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테러 관련 혐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슬람국가(IS)는 아마크 통신을 통해 이번 테러를 자신들의 ‘전사’가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나 마수드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경찰은 그의 테러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8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마수드는 자신의 직업을 교사로 적고 버밍험에서 테러에 사용한 차를 빌렸지만 교사 자격을 가진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BBC에 따르면 마수드는 워낙 밤마다 검은색을 입고 돌아다녀 동네 주민들은 그를 뱀파이어로 불렀다고 전했다.

사망자는 75세 남자의 사망으로 5명으로 늘어났다. 두 아이를 학교에 데리러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한 아이샤 프레이드(Frade)의 남편은 “내 인생이 완전히 찢겨나갔다”고 고통스러워했다. 미국 유타에서 결혼 25주년을 맞아 유럽 여행을 왔다가 희생당한 뮤지션 커트 코크란 부부의 사연도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들은 23일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다 사고를 당했다. 코크란의 부인 멜리사도 중태다.

런던=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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